-
[밀물썰물] 지구 최대의 적
생애 처음으로 양산을 구입했다. 양산이 배달돼 올 때까지만 해도 걱정이었다. “남자가 웬 양산”이라는 주위 사람의 시선을 우려해서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백회를 타고 골수까지 말라버릴 기세로 내려쬐는 강렬한 태양빛에 양산은 정말 반가운 존재가 됐다.
일찍 찾아온 찜통더위는 인간의 형태만 바꿔 놓은 게 아니었다. 바다 속도 마찬가지다.
지난 6일 경북 영덕 앞바다서 대형 참다랑어 70마리가 잡혔다. 정치망 어장 그물에 잡힌 참다랑어는 길이 1~1.5m, 무게는 30~150kg이나 된다고 한다. 이 참다랑어는 수협에서 kg당 1만 4000원에 위판됐는데, 평소 영덕 앞바다에서 참다랑어가 잡히기는 했지만 무게가 통상 10㎏ 안팎에 불과했다. 관계 당국도 대형 참다랑어가 한꺼번에 잡힌 것은 드문 일이라고 했다. 기후 변화로 대형 참다랑어가 영덕 해상에 수시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어민들의 소득 증대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기후변화 측면에서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기후변화의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는 찜통 더위, 즉 폭염이다. 지난 7일 밀양의 기온은 39.2도까지 올라 7월 상순 기온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도 일부 지역은 40도가 넘기도 했다.
한국만 폭염에 시달리는 건 아니다. 유럽은 올해 가장 더운 6월 말과 7월 초를 보냈다. 지난 1일 유럽 남서부 끝에 위치한 이베리아반도 여러 곳의 온도가 43도를 넘었고 밤 기온도 28도를 기록했다. 포르투갈 모라의 기온이 46.6도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지구촌 전체가 불덩이다. 올해가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요즘 같은 찜통 더위를 두고 사람들은 “이러다 뭔 일이라도 나겠다”는 반응이다. 이러다 뭔 일이 나는 게 아니라 벌써 온갖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폭염으로 해마다 50만 명이 죽어나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피해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폭염은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탄소 배출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임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인간의 생존과 삶을 위해서는 탄소 배출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등 전쟁터에서도 엄청난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인간은 삶을 위해서도, 삶을 파괴하는 데서도 지구에 해를 끼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최대의 적은 인간이다.
2025-07-10 [17:57]
-
[밀물썰물] 부산~러시아 직통열차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 관계가 최근 한층 두터워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를 돕기 위해 1만 5000명을 파병한 데 이어 추가 파병도 검토 중이다. 이 와중에 러시아와 북한은 평양과 모스크바를 잇는 직통열차 운행을 최근 재개했다. 이 열차의 운행 재개는 부쩍 깊어진 양측의 우호 관계를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러 직통열차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2020년 2월 운행을 중단했다. 5년 만에 재개된 이 열차 운행 노선은 총 1만㎞를 넘는다. 지구의 둘레 길이가 4만 75㎞인 점을 감안하면 지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거리를 달리는 것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장거리 노선으로 꼽힌다. 편도로 8일이나 소요된다. 비행기를 이용하더라도 11~13시간가량 소요되는 기나긴 노선인 셈이다.
북러 직통열차는 평양에서 북한 국경에 인접한 러시아 하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도달한 뒤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타고 모스크바까지 달리는 방식으로 운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열차는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 치타,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키로프, 코스트로마 등 TSR 주요 역에 정차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노선 길이는 9288.2㎞에 달한다. 1891년 철도 건설을 시작해 1916년 모든 구간이 개통됐다. 이 철도는 한민족과 관련한 슬픈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 1937년 당시 소련의 스탈린은 이 철도를 이용해 연해주 지역에 거주하던 한인 17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TSR에는 정든 터전을 버리고 황량한 중앙아시아로 옮겨야 했던 한인들의 눈물이 담겨있는 셈이다.
특히 TSR은 우리나라 대북 정책 역사에도 자주 등장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의 철도를 연결, TSR을 통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에도 이 구상을 현실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역시 불발됐다. 북러 직통열차 운행 재개를 지켜보면서 부산에서 러시아로 연결되는 이른바 ‘부러 직통열차’가 달리는 장면을 상상해 봤다. 부산에서 대전, 서울, 북한을 거쳐 TSR을 타고 유럽에 도달하는 육로가 열린다면 물류 수송, 관광 활성화 등의 측면에서 엄청난 호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최근 갈수록 격화되는 신냉전 구도를 감안하면 부러 직통열차 현실화는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부산에서 유라시아로 뻗어나가는 육로가 하루빨리 열리길 기원한다.
2025-07-09 [17:57]
-
[밀물썰물] 아파치의 조기 퇴역
미군 헬리콥터들은 북미 원주민 부족과 용맹한 전사 이름을 딴 경우가 많다. 대형 공격 헬기 ‘아파치’(AH-64)의 이름도 원주민 부족 중 가장 용맹했던 아파치족에서 따왔다. 애리조나와 뉴멕시코의 척박한 환경에서 살던 아파치족은 기마술, 매복, 야간전투에 능했다. 19세기 중반 미국과 멕시코에 맞서며 아파치족을 이끈 영웅은 제로니모였다. 그는 강철 같은 지도력, 불굴의 의지를 지닌 전사로 미군의 존경을 받았다. 미 공수부대원들은 강하 작전을 할 때 “제로니모”를 외친다.
아파치 헬기는 ‘전차 저승사자’로 불린다. 1986년 미 육군에 도입된 뒤 40년간 가장 치명적인 공격 헬기의 명성을 유지해 왔다. 1991년 걸프전에서 탱크 278대를, 2003년 이라크전 때는 탱크 80여 대와 장갑차 140여 대, 포 250여 문을 파괴하는 위력을 과시했다. 시속 365㎞의 빠른 속도, 두꺼운 장갑차를 뚫는 1200발짜리 30㎜ 기관포, 2.75인치 로켓탄 76기, 장거리에서 적 전차와 벙커를 무력화하는 ‘헬파이어 미사일’ 16기를 갖췄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아파치와 같은 공격 헬기가 힘을 쓰지 못하면서 무용론이 확산하고 있다. 200억 원이 넘는 러시아군 공격 헬기 ‘Ka-52’가 1000만 원 안팎인 휴대용 미사일에 줄줄이 격추됐다. 러시아군 주력 공격 헬기 ‘Mi-28’도 우크라이나의 자폭용 드론 공격을 받고 추락하기도 했다. 첨단 방공망과 드론 성능이 강화되면서 ‘전차 킬러’ 아파치의 위상 하락도 불가피하게 됐다. 미 육군조차 작년 20억 달러(약 2조 7300억 원)를 투자한 차세대 공격 정찰 헬기 사업을 취소하고 무인기와 유무인 복합 시스템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우리나라도 공격 헬기 대신 드론과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 등을 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차 추경예산에서 당초 본예산에 반영됐던 대형 공격 헬기 2차 사업 예산 100억 원 중 97억 원이 삭감됐다고 한다. 아파치 36대 도입을 위한 계약 예산이었는데, 이를 없앤 것으로 사실상 사업이 백지화 수순에 접어들었다. 업체가 제시한 헬기 가격이 대당 441억 원(1차)에서 733억 원(2차) 수준으로 급등했고, 현대전에서 드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대형 헬기 도입 재검토 여론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첨단 드론 위주의 공중 전력 재편이 아파치 헬기의 조기 퇴역을 부른 셈이다. 군사 기술의 급변 속에 ‘지구 최강’이었던 아파치 헬기가 외면받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낀다.
2025-07-08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