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30m·3명 거주… 울산 바다 ‘세계 최대·최초’ 해저 기지 [71%의 신세계, 해저시대로]
④ 출발 ‘수평선’에 서다
2027년 울주군 바닷속 설치 예정
공기 자체 공급 등도 ‘세계 최초’
KIOST 중심 23개 민관학 참여
해저 연구 세계 선두권 성과 기대
영화 속 장면으로만 접했던 ‘해저도시’는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1단계로 울산 앞바다에 해저 기지를 건설하는 사업이 착착 진행 중이다. 이르면 2~3년 안에 바다의 ‘속사정’을 연구하는 대한민국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신리항 앞바다 속으로
울산 울주군 서생면의 자그마한 어촌 ‘신리마을’. 어선이 드나드는 신리항에서 동남쪽으로 1km쯤 떨어진 바닷속에 해양과학계의 이목이 쏠린다. 대한민국 1호 해저 기지가 들어설 예정지다.
‘해양공간 창출 및 활용 기술개발 사업’이라 이름 붙은 우리나라 해저도시 프로젝트는 2022년 본격적인 첫발을 뗐다. 해양수산부 국가사업으로 제안해 국정과제로 채택되면서 5년 동안 373억 원을 투입하는 R&D(연구·개발)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중심이 돼 민관학에서 모두 23개 기관이 참여한다. 구조물 설계·시공, 내부 공간 설계·법 제도, 기초지반 설계·시공, 체류자 안전·생명 유지, 통신·수중 데이터센터 등 수많은 분야에서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사업의 핵심은 수심 30m에서 3명이 30일 동안 체류할 수 있는 한국형 해저 공간 플랫폼, 이른바 ‘해저 기지’를 개발·설치하고 관련 기술을 실증하는 것이다. 앞서 세계 유일 해저 기지 ‘아쿠아리우스’를 1986년부터 운영해 온 미국은 몇 년 전 해저 기지를 추가 건설하는 ‘프로테우스’ ‘로고스’ 등의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후 공회전 상태다. 영국의 해양개발업체 딥(Deep)은 국제우주정거장(ISS)과 유사한 모듈형 해저 기지 건설에 착수했는데, 최근 작은 챔버를 설치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내로라하는 해양 강국들조차 좀처럼 성과를 못낼 정도로 해저는 최첨단 신기술과 대규모 예산을 필요로 하는 도전적인 분야다. 현재로선 세계 주요 국가들이 출발 ‘수평선’ 위에 서서 해저를 바라만 보고 있는 상황. 우리나라가 2027년께 성공적으로 해저 기지 설치를 완료하면, 해저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으로 나서게 된다.
■세계 최대·최초를 향해
대한민국 1호 해저 기지는 최근 설계가 완료돼 모듈 제작 공사 발주를 앞두고 있다. 최초 모델은 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방사형 구조였는데, 수정을 거듭해 최종적으로 우주선 같은 외관을 갖추게 됐다.
최종 모델은 가로 12.5m 세로 15.6m 높이 6.2m ‘메인 모듈’을 중심으로, 각각 지름 5.0m 길이 10.0m짜리 원통형 ‘데이센터 모듈’과 ‘거주 모듈’을 좌우로 연결한 형태다. 면적 119.6㎡, 부피는 1143㎥로 현존하는 해저 기지 중 세계 최대 규모다. 해양플랜트나 항만시설에 쓰이는 강철로 제작해 기술 목표상 해저 50m(6기압)에서 5명까지 거주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세계 최초다.
메인 모듈은 감압에 필요한 챔버 공간과 연구실을 비롯해, 산소발생기·이산화탄소제거기·해수담수화기기 등 기지 운영에 필수적인 장비 공간으로 구성된다.
데이터센터 모듈에는 데이터센터가 설치돼 해수냉각시스템과 수중통신을 실증 연구한다. 해저 데이터센터는 바닷속 차가운 물을 냉각용으로 쓸 수 있어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해저 시설이다.
마지막으로 주거 모듈은 침실과 거실, 주방과 화장실 등 상주 인원이 쾌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공간 배치를 최적화했다. 내부 공간 설계를 담당한 강신우 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이사는 “해저 분야는 아직 법제화가 안 돼 있어 건축법보다 기준이 더 강한 선박법을 적용해 안전 확보를 가장 중요시했다”고 말했다.
■대박 연구 성과 나올까
한국형 해저 기지는 가로·세로 25m짜리 기초플랫폼 위에 대각선으로 설치된다. 지상에서 조립한 뒤 해상 크레인을 이용해 무인 시공 방식으로 바다 아래로 내려보낸다. 공간적으로는 육상·수면과 완전 분리된 반면, 에너지는 전력·통신 케이블을 통해 육지로부터 공급 받는다.
출입은 잠수 방식이다. 상주 인원은 잠수 장비를 이용해 메인 모듈 앞쪽 문풀(Moon Pool)을 통해 출입부로 진입한다. 이어 챔버를 거치는 동안 4기압(해저)에서 1기압(육지)으로 감압한 뒤 본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기지 안에서는 해수담수화 기기로 식수와 생활용수를 생산하고 산소 제조용 초순수도 얻는다. 오폐수는 정화해 일부만 배출하고 나머지는 저장해 뒀다 육지로 옮긴다. 물과 공기를 자력 생산하고 전기와 음식물은 육지에서 공급 받기 때문에, 좁고 밀폐된 공간의 불편함만 견딜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수개월, 수년도 생활이 가능하다. 모듈별로 비상 상황에 대비해 탈출 시설도 갖췄다.
계획대로 2027년까지 해저 기지 설치가 끝나더라도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세계 최초 기술을 적용한 세계 최대 해저 기지가 지구상에 첫선을 보이고, 연구 성과물을 길어올릴 날이 머지않았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