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위기 처한 한국의료… 국책연구기관, 시스템 붕괴 경고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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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력 부족·분포 불균형 심화 전망
원인은 행위별수가제 기반 보상체계
“국민 3대 물음에 답하는 개혁 이뤄야”


사직 전공의 등을 대상으로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수련병원별로 시작된 11일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의료진이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사직 전공의 등을 대상으로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수련병원별로 시작된 11일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의료진이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국책연구기관이 한국 보건의료체계가 의료 인력 불균형, 왜곡된 전달 체계, 불공정한 보상 구조로 복합적인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개선 없이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가 붕괴 위기에 내몰린다며, 국민이 체감하는 3가지 물음을 중심으로 의료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시했다.

보건복지부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수행한 ‘국민중심 의료개혁 추진 방안에 관한 연구’ 용역보고서를 지난 14일 공개했다.

연구원은 현 보건의료 체계가 코로나19, 의대 정원 등 위기를 겪으며 다양한 측면에서 위기가 중첩돼있고, 위기 상황은 공공의료, 의료체계, 의료자원, 접근성, 의료재정, 미래 대응 측면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가 지적한 위기의 핵심 중 하나는 불충분한 의료 인력과 불균형한 분포다. 특히 필수의료 분야의 전공의 충원이 저조하고 전문인력 수급이 어렵다. 2024년 상반기 1년차 레지던트 충원율은 소아청소년과 26.2%, 심혈관흉부외과 38.1%, 산부인과 63.4% 순으로 낮았다. 반면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 일명 ‘피안성’으로 불리는 인기 과목에서는 충원율 100%를 기록했다.

연구원은 필수의료 인력의 수도권 집중이 지속돼 앞으로는 분야·지역별 의료인력 불균형이 더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인구 1000명 당 필수의료 전문의 수는 서울 3.02명, 경기 2.42명인 반면 비수도권은 평균 0.46명에 불과했다.

의료인력과 인프라가 수도권에 쏠리면서 지역 환자 유출도 심화한다. 또 경증 외래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으로 쏠리는 의료전달체계 기능의 왜곡도 나타난다고 연구원은 밝혔다.

일차의료 기반은 전반적으로 취약해 만성질환 관리나 건강증진, 예방 중심의 의료서비스 제공은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일반의 수는 0.15명으로 OECD 평균 0.83명의 약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일차의료의 병·의원 간 진료 의뢰·회송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환자가 의료기관을 자의적으로 선택한다. 이에 외래이용횟수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점 등 진료의 비효율성과 의료자원의 낭비가 초래되고 있다고 연구원은 진단했다.

연구원은 문제의 원인이 행위별수가제 기반 보상체계에 있다고 지목했다. 진료량을 기반으로 한 지불제도이기 때문에, 수요가 적거나 수익이 낮은 지역·필수 의료와 같은 영역은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기 어렵다. 의료인이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이유도 ‘노력 대비 낮은 대가 등 경제적 이유’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연구원은 이런 문제들이 맞물리며 필수의료 공백과 지역의료 붕괴라는 총체적 위기를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국민중심 의료개혁’을 미래상으로 제시하며 ‘국민의 3대 물음’에 답하는 의료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먼저 ‘나와 우리 가족이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24시간 의료이용 지원 서비스 도입을 제안했다. 영국의 NHS처럼 전화나 앱으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언제든 가장 적절한 병원으로 안내하는 ‘의료 길잡이’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둘째, ‘나와 우리 가족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병원 중심 치료를 넘어선 회복·재활을 돕는 급성기 이후 의료 확립을 주문했다. 재택의료와 원격의료 등을 활성화해 환자가 있는 곳으로 의료가 찾아가게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나와 우리 가족의 의료비 부담이 과중하지는 않은가’라는 물음에는 간병 국가동행제와 의료비 안심보장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급성기 병원의 간병 서비스는 국가가 책임지는 형태로 확대하면서, 비급여 진료와 실손보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부담을 덜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인력부족과 불균형, 전달체계의 왜곡, 보상체계의 불공정성, 의료사고 부담 증가, 지역의료의 격차 심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보건의료체계가 당면한 구조적 근인이 발견되며 실질적인 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에 이르렀다”며 “국민이 체감하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삶의 현장에서 보건의료체계와 관련해 국민이 직면하는 3대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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