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토마토를 보면 생각나는 이 영화
■필름 위의 만찬/이용재
필름 위의 만찬/이용재
마트에서 장을 보다 덜 익은 녹색 토마토에 눈이 갔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라는 영화에 관한 글을 읽은 까닭이었다. 영화 속 여주인공 잇지는 오빠가 죽은 후 오빠가 사랑했던 여인 루스에게 호감을 느낀다. 잇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루스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들은 기차역 부근에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와 바비큐를 대표 메뉴로 하는 카페를 운영하며 행복하게 지낸다. 어느 날 KKK단의 일원이었던 루스의 전남편 프랭크가 찾아와 아이를 납치하려고 시도한다. 마침, 누군가가 나타나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때려 프랭크는 죽고 만다. 웬일인지 프랭크는 실종 처리되고, 5년 동안 수사를 하지만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한다.
영화배우이자 작가인 패니 플래그가 쓴 동명 소설은 1987년 발간 직후 36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였다. 로케 장소였던 미국 조지아주 줄리엣의 카페로 사용되었던 공간에는 30년이 넘도록 사람들이 찾아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먹고 간단다. 영화가 소개되기 전에는 대부분의 미국인이 이 음식을 몰랐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영화의 성공과 함께 미국 남부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레스토랑에 메뉴로 포함되었다.
토마토도 튀겨 먹는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필름 위의 만찬>이 소개한 레시피에 따르면 이 요리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자작하게 달궈내는 ‘찌짐’에 가깝다. 염소젖 치즈와 곁들여 화이트나 로제 와인으로 반주하면 잘 어울린다는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다. 한잔하다가 문득 루스의 전남편 프랭크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살짝 ‘스포’하자면 깜짝 놀랄만한 비밀이 바비큐에 들어 있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낯선 음식 맛이 궁금한데 파는 곳이 없으니 직접 요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대서사시적 먹방”으로 표현되는 영화 ‘황해’부터 시작해 사약이 나오는 ‘왕과 사는 남자’까지 50여 편의 영화 속 음식 이야기가 들어 있다. 저자는 음식 평론가이자 번역가로 각종 매체에 음식 평론과 칼럼을 쓰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음식이 인물의 심리를 비추는 거울이자 서사의 결정적 단서가 되는 순간들을 세밀하게 포착했다. 까칠한 음식 전문가가 고른 음식 영화 리스트라 일단 믿고 봐도 좋겠다. 음식전문가로서 영화에 나온 음식들이 아쉬운 순간이 많았던 모양이다.
지난해에 개봉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보고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알고 보니 음식이 가진 인간관계의 역동성과 심리적 메커니즘도 기막히게 포착하는 감독이었다. 그가 감독한 영화 ‘팬텀 스레드’는 사랑에 빠져 함께 살게 되었지만 사소한 습관이나 문화 차이로 갈등하는 남녀의 이야기다. 모든 걸 통제하려는 남자와 거부하는 여자 사이에 생긴 갈등으로 식사 자리는 전쟁터가 되고 만다. 내치려는 남자에게 여자가 내놓은 최후의 수단이 독버섯 오믈렛이었으니….
음식, 영화, 책은 모두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다. 이 책에는 일부러 찾아서 보고 싶은 영화가 가득하다. 마침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는 부산푸드필름페스타의 계절이 다가온다. 부산푸드필름페스타에서 만날 새로운 음식 영화들이 기대된다. 이용재 지음/푸른숲/376쪽/1만 88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