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식의 디지털 광장] 어린이신문 16만 부를 찍는 이유
부산의 내일을 쓰는 어린이기자단
당당한 시민으로 목소리 내는 아이
지역사회가 함께 만든 미디어마을
미래를 향한 가장 확실한 사회 투자
어른들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할 때
온 마을이 나서서 공공 지원 더해야
올해 2월 말 디지털국을 맡았다. 〈부산일보〉 홈페이지 부산닷컴에서 지면용 기사를 관리하고, 포털용 기사를 생산·유통하는 게 주 업무다. 독자를 위한 영화·야구 관람권 이벤트, 창간 80주년 기념 ‘독자 추억 공모전’, 지난해 1만 3000명가량이 참가한 ‘국립공원 금정산 챌린지 인증 사업’도 우리 소관이다. 종이신문이 사양산업을 지나 이제는 ‘야광(夜光)산업’으로 불리는 시대, 우리 국의 미션은 지면을 넘어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콘텐츠와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 정도로 봐주면 좋겠다.
4월부터는 부산시가 주관하는 ‘빅아이 도란도란 어린이신문’ 제작과 어린이 기자 314명이 포진한 꼬마부산기자단(이하 ‘꼬부기’) 운영도 맡았다. 지난해 첫발을 뗀 이 사업엔 큰 포부가 담겼다. 꼬부기가 쓴 기사를 또래 초등학생들이 함께 읽으며, 부산의 역사·문화에 자부심을 가진 '당찬 시민'으로 자라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아이를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동시대를 함께 사는 엄연한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하겠다는 뜻도 녹아 있다.
본보의 슬로건은 ‘80년을 담다, 100년을 열다’이다. 지면부터 디지털, 유튜브, 인공지능(AI)까지 미디어 플랫폼과 기술이 복잡다단해져도 결국 그 안을 채우는 건 사람과 콘텐츠다. 다음 세대 독자들에게 활자의 힘과 매력을 경험케 하는 건, 굳이 ‘미디어 리터러시’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디지털·AI 시대에도 변치 않는 언론의 소명이다. 그런 맥락에서 〈부산일보〉가 어린이신문 과업을 수행하는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과업은 만만치 않았다. 문장 교정·교열, 기사 첨삭, 현장 방문 취재, 신문 배부까지 챙길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쓴 기사를 읽을 때면 참신한 관점과 취재 열정에 놀라며, 20여 년 전 수습기자 때 초심을 새삼 떠올리기도 했다.
‘신박한’ 경험도 있었다. 지난 5일 어린이날 큰잔치가 열린 부산 영화의전당. 꼬부기 기자 15명이 출동했다. 취재에 앞서 기자 활동 기본 요령을 설명하는데 어찌나 열심히 듣던지 예정 교육 시간을 훌쩍 넘겼다. ‘육하원칙이 뭐예요’ 등 질문 세례에 식은땀은 났지만, 꼬부기의 진지한 모습에 흐뭇했다.
경쟁 논란과 민원 탓에 운동회도 사라지고 현장학습도 힘들다는 요즘이다. 그 빈틈을 학원과 사교육이 채운다. 성평등가족부의 ‘2026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생 84.4%가 사교육을 받고, 하루 여가시간은 1~2시간에 불과하다. 그마저 유튜브나 게임이 차지하고 10명 중 7명은 생성형 AI를 다루며 보낸다. 놀 시간은 부족하고 디지털 유혹은 넘쳐나는 환경에서, 아이들이 펜을 쥐고 발로 뛰며 기사를 써낸다는 건 놀랍고 대견한 일이다.
도란도란 신문은 부산 지역 전체 초등학교와 공공도서관 어린이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 등 450여 곳에 배포된다. 지난해 11만 부(8면)에서 올해 16만 부, 12면으로 늘어났다. 신문을 받아본 학교와 초등학생·학부모의 반응이 꽤 좋다고 한다. 지역 서점에 비치한 신문이 금세 동이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난 4월 30일 발간된 봄호는 표지부터 파격이다. 아이들이 직접 그린 표지를 1면에 전면 배치했다. 2면부터는 지역 곳곳을 누빈 현장·미션 취재 결과물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부산시 매거진운영팀과 디지털국 기자들이 가려낸 알토란 같은 기사들이다. 시교육청의 신문활용교육 콘텐츠, 부산외국어대 웹툰학과에서 그린 웹툰은 읽을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선물을 주는 낱말 퀴즈도 있다. 무엇보다 무료라는 게 제일 큰 매력이다.
그러고 보면 어린이신문은 단순한 종이 신문을 넘어 지역 행정·교육·언론이 협업한 ‘하이브리드 매체’인 셈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명언이 ‘미디어 마을’로 구현되었다고 하면 다소 과한 해석일까?
앞으로 〈부산일보〉는 꼬부기들이 세상과 지역을 향해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펜을 쥐여주는 멘토가 될 것이다. 다만, 신문 16만 부가 단순한 종이 뭉치로 남지 않으려면 ‘마을 어른들’의 각별한 관심이 더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를 일러주고 공론장을 제공하는 것은 지역 사회의 미래를 향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어린이신문이 일회성 이벤트나 단순한 실험에 그치지 않으려면 공공의 지원과 공익적 관심이 필수적이다. 지방정부의 예산·행정 지원, 지방의회의 입법 노력에다 지역 기업들의 후원 등 제도적 지지와 연대가 절실한 이유다. 어린이 기자들이 씩씩하게 써 내려갈 부산의 내일을 위해, 진정으로 ‘온 마을’이 나서야 할 때다.
전대식 디지털국장 pro@busan.com
전대식 기자 pr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