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혐오 표현을 혐오한다
김준용 문화스포츠부 기자
‘노무한 박수’, ‘5·18 탱크 데이’.
혐오 표현이 세상을 강타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조롱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는 얼마 전만 해도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시민이 찾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프로 스포츠 구단 유튜브 채널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음지에서 극단의 성향을 가진 누리꾼들끼리 주고받던 혐오가 양지로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 롯데 자이언츠 유튜브 ‘자이언츠TV’에는 ‘[HOTDUG] 박세웅의 호투에 응답하는 득점’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영상에는 지난 10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 모습이 담겼다.
문제의 장면은 덕아웃에서 롯데 노진혁 선수가 윤동희 선수의 안타 장면에서 박수를 치는 장면에서 나왔다. 박수를 치고 있는 노 선수의 유니폼 뒷면 이름에 ‘무한 박수’라는 자막이 삽입됐다. 이름 중 ‘진혁’을 가리고 자막이 달려 ‘노무한 박수’로 읽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18일을 ‘탱크 데이’라고 프로모션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무지, 무시, 폄훼가 담긴 프로모션이었다. 원래 있던 '탱크 텀블러'라지만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시민들은 스타벅스를 불매하고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까지 나서 사과했지만 ‘탈벅’ 행렬이 이어지고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혐오 사건에서 심각한 점은 위장된 혐오와 조롱이라는 점이다. 양지로 나온 혐오 표현은 명확성이 덜하기 때문에 제재가 쉽지 않다. ‘노무한 박수’라는 표현 속 노무의 온라인 쓰임새를 아는 사람은 혐오를 즉각 인지한다. 하지만 맥락을 모르는 사람은 인지가 쉽지 않다. 아는 사람 사이에서만 통하기 때문에 명백한 혐오 표현이지만 법적 처벌이 쉽지 않다.
지금 상황에서 각 기업들의 사과는 법적 제재를 우려해서라기보다는 기업 이미지를 우려한 사과에 무게가 실린다. 우리 사회의 대응도 비슷하다. 법적 제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건 지금처럼 스타벅스 불매 운동이 전부다. 분명히 혐오라는 가해를 했지만 책임지는 주체가 없는 일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
양지로 나온 혐오 표현을 이번 기회에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최소한 공적 영역에서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행위에는 단호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안한 징벌 배상, 과징금 공론화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의 침해에 대한 논의도 이어질 수 있다. 무조건적으로 모든 표현을 막는 방식이 돼서는 안된다. 다만 핵심은 혐오는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곧 혐오 콘텐츠들은 연성화를 거쳐 지금보다 ‘세련된’ 모습을 갖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혐오는 지금보다 더 공적인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더 자유롭게 유통될 것이다. 그때는 누구도 혐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을 것이다. 혐오를 혐오할 마지막 골든타임이 흐르고 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