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이야기] 걷는 속도와 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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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인제의대 해운대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동남권항노화의학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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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환자들의 걸음걸이만 보아도 그분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병원에서는 노쇠나 근감소증을 평가할 때 보행속도를 중요하게 본다.

올해 3월에 흥미로운 연구가 발표되었다.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항노화 연구에 많이 사용되는 아프리카 터키석 킬리피시라는 작은 물고기를 평생 관찰했다. 연구진은 젊은 킬리피시들의 헤엄치는 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한 후, 이들이 노화하고 사망하는 과정을 끝까지 추적했다. 젊었을 때부터 빠르고 활발하게 움직이던 개체들이 더 오래 살았을 뿐만 아니라, 노화 진행 속도 자체도 느렸다. 반대로 젊은 시절부터 움직임이 느렸던 개체들은 더 빨리 노화 징후를 보이고 조기 사망했다.

물고기 연구가 사람에게도 적용될까? 답은 ‘그렇다’이다. 미국의 유명한 연구에서 65세 이상 노인 3만 4000여 명을 분석한 결과, 보행속도가 빠를수록 생존율이 높았다. 이후 여러 연구에서도 걷는 속도는 사망, 심혈관질환, 치매, 낙상, 장애 발생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2022년 영국 바이오뱅크 40만 명 이상을 분석한 네이처 자매지 연구에서는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이 느리게 걷는 사람들보다 백혈구 텔로미어 길이가 더 길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을 보호하는 구조물로, 흔히 생물학적 노화의 지표 중 하나로 사용된다. 즉 빠른 걸음은 단순한 운동 습관이 아니라 몸의 노화 속도와도 관련될 수 있다.

왜 걷는 속도가 노화를 말해줄까? 걷기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전신 운동이다. 뇌가 방향을 잡고 균형을 유지하며, 척수와 말초 신경이 근육에 정확한 신호를 보내고, 심장과 폐가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동시에 근육과 관절이 힘을 내고 충격을 흡수하며, 시각과 평형감각이 주변 상황을 처리해야 한다. 이 모든 시스템이 동시에, 빠르게, 실패 없이 작동해야 우리가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다. 따라서 걷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은 이 중 여러 부분에서 동시에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이다. 걷는 속도는 말 그대로 우리 몸 전체 시스템의 종합 성적표인 셈이다.

다행히 걷는 속도는 훈련으로 개선할 수 있다. 의자에서 손을 짚지 않고 일어나기, 계단 오르내리기, 누워서 엉덩이 들어올리기 같은 간단한 운동만으로도 몇 달 후 보행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질 수 있다. 인터벌 걷기도 효과적인데, 1분은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1~2분은 편안하게 걷는 패턴을 20~30분 반복하면 심폐기능과 근지구력이 동시에 향상된다.

걷는 속도는 타고난 젊음의 지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훈련으로 개선할 수 있는 항노화 습관이기도 하다. 오늘 내 걸음이 어제보다 조금 더 힘차고 빨라졌다면, 그것은 단순한 운동 기록이 아니라 내 몸의 노화 시계를 조금 늦추는 가장 현실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다. 지금 내 발걸음이 앞으로 20년 동안의 나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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