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를 모르면 일본을 알 수 없다
■일본 요괴 도감 101/잭 데이비슨 지음
일본 요괴 도감 101/잭 데이비슨 지음
“요괴를 믿으십니까?” 이 책은 어느 날 유령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을 때부터 시작한다. 갑자기 강의실의 전깃불이 한꺼번에 나가는 게 아닌가. 원인을 조사한 결과, 전구가 과열되어 두꺼비집이 내려간 것으로 규명된다. 매우 드물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왜 하필 그때였을까. 인간의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받는 순간이다.
요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존재다. 요괴는 끝없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세계에 산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일본 서브컬처의 뿌리에는 언제나 요괴가 있었다. ‘이웃집 토토로’, ‘고질라’, ‘귀멸의 칼날’은 뛰어난 요괴 영화다. 요괴는 이제 제품의 마스코트가 되고, 비즈니스의 매개물이 되기도 한다. <일본 요괴 도감 101>은 현대 대중문화 창작의 거대한 원천이 되어준 일본 요괴를 집대성했다. 요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일본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벰, 베라, 베로가 “빨리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외쳤던 기억이 선명하다. 갑자기 궁금해서 찾아보니 어린 시절 즐겨본 만화영화 ‘요괴인간’은 사상 두 번째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이었다(첫 번째는 ‘황금박쥐’다). 숨어서 살아가던 이들 요괴 인간은 지금쯤 소원하던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에 따르면 요괴의 종류는 형태를 바꾸는 요괴, 신비롭고 마법 같은 힘을 가진 생물, 자연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존재,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죽은 자의 영혼으로 구분된다.
여우 요괴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 어느 날 남편이 아름답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아내를 놀래주기 위해 몰래 집으로 되돌아온 게 화근이었다. 앉아 있는 아내의 기모노 자락 아래에 튀어나온 하얀 꼬리를 보고 말았다. 아내는 여우였다. 여우와 관련된 일본 신화는 한국의 구미호 이야기가 흘러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는 여우를 모시는 신사가 3만 개가 넘고, 유부 우동을 ‘키츠네(여우) 우동’이라고 부른다.
화장실 소녀 하나코상도 기시감이 있다. 소문을 듣고 세 번째 화장실 칸으로 간다. 아무도 없지만 문을 세 번 두드리며 “하나코상, 거기 있나요?”라고 속삭이면, 문이 천천히 열린다. 이 같은 도시 전설은 현대의 민담으로, 친구의 친구가 엿들었다는 식으로 사실처럼 퍼져나간다. 우물 유령, 꿈을 먹는 요괴, 보이지 않는 벽, 그림자 여성까지 요괴의 세계는 참으로 다채롭다.
이 책은 매력적인 요괴 그림 때문에 더 소장하고 싶어진다. 일본 에도 시대 우키요에(목판화)의 전설로 불리는 거장이 남긴 오리지널 판화는 고전 요괴의 원형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여기에다 마블 코믹스 등에서 활약 중인 현대 작가들의 작품까지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 고전 요괴들이 현대의 서브컬처 안에서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저자 잭 데이비슨은 ‘오키나와의 유령’, ‘일본 호러 바이러스’ 등 여러 다큐멘터리에 일본 민속 전문가로 출연했다. 옮긴이 강은정 씨는 영어를 못했던 게 트라우마로 남아 꾸준히 영어 공부에 매달린 결과, 영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단다. 잭 데이비슨 지음/강은정 옮김/최준란 감수/공명/320쪽/4만 30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