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형은 감정이 되고, 움직임은 음악이 된다-홍승혜 개인전
국제갤러리 부산점, 홍승혜의 ‘이동 중’
평면·영상·조각 등 24점 통해 입체 조망
전시는 6월 14일까지…23일 작가 대화
사운드 직접 만들고, ‘디지털 온기’ 느낌도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에 전시된 작품 '벽 선반'(2023)과 조명 작품 '불빛'(2021) 앞에서 포즈를 취한 홍승혜 작가. 국제갤러리 제공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에 전시된 '움직이세요'(2022). 국제갤러리 제공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 전시 전경. 가운데 작품이 '표정 연습'(2025). 국제갤러리 제공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 전시 전경. 왼쪽 작품이 '표정 연습'(2025). 국제갤러리 제공
커다란 스크린 원 위로 크고 작은 원과 막대, 십자 같은 게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공을 떠돌던 도형은 어느 순간 합체해 얼굴이 된다. 웃는 얼굴, 화난 얼굴, 놀란 얼굴, 삐진 얼굴…. 우리가 흔히 보던 ‘이모티콘’이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 수단인 이모티콘에 착안해 인간의 감정을 간결한 도형 언어로 풀어낸 영상 작품 ‘표정 연습’(2025)이다. 또 다른 작품 ‘우주로 간 스누피’(2019) 역시 아주 단순한 도형의 구성만으로 스누피의 우주여행을 상상하게 만든다.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에 전시된 '우주로 간 스누피'(2019). 김은영 기자 key66@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에 전시된 영상 '우주로 간 스누피'(2019) 스틸 컷. 국제갤러리 제공
홍승혜(67) 개인전 ‘이동 중’(On the Move)이 부산 수영구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가 꾸준히 탐구해 온 ‘이동성’ 개념을 기반으로 한 평면, 영상, 조각 등 24점을 선보인다. 작가의 작업 변모 과정을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23일 오후 4시엔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MEET THE ARTIST: 홍승혜’ 아티스트 토크가 마련된다.
이번 전시는 ‘움직임’이라는 단일한 키워드에서 출발하지만, 그 양상은 단순하지 않다. 작가는 이를 세 가지 층위로 나눈다. 움직이지 않지만 움직임을 내포한 평면, 실제로 움직이는 영상, 그리고 관객이 직접 이동시키며 개입할 수 있는 입체 작업. 이 세 갈래의 흐름은 전시 공간을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엮는다.
작가는 이 모든 움직임의 근원을 ‘음악’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음악은 단순한 청각적 요소를 넘어선다. 멜로디, 리듬, 톤, 볼륨처럼 미술과 공유하는 개념 전반이 조형의 언어로 번역된다. “음색이라는 말에 ‘색’이 들어가듯, 음악과 미술은 이미 많은 어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내적인 운율, 음악성이 작업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내 작업은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일종의 춤이다. 마우스로 추는 춤”이라고 설명했다.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에 전시된 작품 픽토그램 '사람들'(2020). 김은영 기자 key66@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에 전시된 로베르 필리우의 격언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흥미롭게 하는 것"을 표현한 아티스트 북(2006) . 김은영 기자 key66@
전시장에 들어서면 다층적인 영상과 사운드가 맞물린다. 작가는 이를 ‘하나의 교향곡’에 비유한다. 각 영상은 독립된 성부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치밀하게 조율된 오케스트레이션을 이룬다. 실제로 그는 영상마다 사운드의 크기를 세밀하게 조정하며 균형을 잡았다. 관객은 어느 순간, 형태와 소리가 정확히 맞물리는 ‘싱크’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음악은 거의 모든 작업에 개입한다. 단 하나, ‘네잎클로버’만을 제외하고. 작가는 이 작품을 ‘무성’으로 남겨두며 오히려 대비를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기술에 대한 그의 태도다. 작가는 첨단 기술에 집착하지 않는다. “로우테크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결과가 나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방법을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느냐는 점이에요.” 아이패드 기반의 음악 작곡 앱(개러지밴드)을 활용해 직접 사운드를 만든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접근 가능한 도구를 통해 창작의 문턱을 낮추고, 방법론 자체를 열어두려는 의도다. 이런 덕분일까, 그의 디지털 작업을 보는데 온기가 느껴진다.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에 전시된 '가족'(2019). 국제갤러리 제공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에 전시된 '가족'(2019) 5작품 중 네 . 김은영 기자 key66@
작가의 또 다른 핵심 키워드는 ‘비추다’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무언가를 드러내고 조명하는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 실제로 영상 작업은 조명으로 기능하며, 공간 속 사물과 관객을 비춘다. “저는 누군가를 비춰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은유를 넘어, 작업의 기능적 구조로 구현된다. 작품은 대상이면서 동시에 매개가 된다. 이러한 태도는 ‘가족’이라는 주제에서도 드러난다. 단순한 도형의 배열로 구성된 서사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아이의 탄생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관계망을 형성한다.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키워드는 보편적 서사로 확장된다.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액자형 부조' 작품에 관해 설명하는 홍승혜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액자형 부조' 작품에 관해 설명하는 홍승혜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입체 작업에서는 관객의 참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부 작품은 직접 움직이고 재배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움직인다는 건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뜻이죠. 그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유기적 기하학’ 개념과도 맞닿는다.
그에게 작업은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관객의 해석이 필수적으로 개입한다. 그래서 그는 설명을 최소화하고, 질문과 응답의 방식으로 소통하기를 택한다. “관객의 피드백은 제 작업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결국 이 전시는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제시하기보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주되는 상태를 제안한다. 음악처럼, 그리고 움직임처럼.
홍승혜는 서울대 회화과와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97년 사각 픽셀 작업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했고, 최근 벡터 문법을 도입하면서 보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이미지로 확장되었다. 전시는 6월 14일까지 열린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