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뜨거운 재보선 냉담한 지선의 결과
박종호 문화스포츠부 선임기자
북갑 보선에 가려 지방선거 후보 안 보여
풀뿌리 민주주의 성장 기회 박탈 아닌가
2년 뒤 총선 때도 체급 올리기 사퇴 우려
"임기 끝까지 채우겠다" 주민에게 약속해야
세 사람이 얼마 전 tvN ‘유퀴즈’ 프로그램에 나온 이덕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덕화는 칠십 대인데도 여전히 멋이 있었다. 다들 한 번씩 따라 했던 ‘트라이’ 광고에 나왔을 때와 비교해도 크게 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덕화는 자신을 젊게 보이게 만드는 한 제품의 광고 모델을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때가 선거철인 만큼 이야기가 갑자기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한동훈으로 튀었다. 한 사람이 “한동훈이 부산에 뼈를 묻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부산을 알리는 광고 모델이라도 해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한동훈과 맞붙는 후보가 누구냐”라고 물었다. 국민의힘 후보는 결정되기 전이어서 하정우라고 말해줬다. “영화배우 하정우?”라고 다시 묻기에 ‘하GPT’라고 답하니 그제야 알아듣는가 싶었다. 그다음 말이 걸작이었다. “우리 동네(동래구)에도 이번에 선거해?”라고 묻는 게 아닌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가 심하게 주객전도되었다고 깨우쳐 주는 스승이었다.
고작 2년짜리 국회의원 재보선에 가려 지방선거 의제와 후보가 잘 보이지 않는다. 평택을 국회의원을 뽑는 재선거가 이번 전국 선거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민주당 김용남·국민의힘 유의동·조국혁신당 조국·진보당 김재연·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가 출마해 그야말로 용쟁호투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러니 평택 국회의원 후보는 훤히 꿰고 있어도 평택 시장에 누가 나왔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1400만 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경기도지사 선거조차 평택을에 가려 별 관심을 못 받고 있다.
뜨거운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문에 부산시장이나 교육감 선거까지도 시들하게 비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해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선 지역이 모두 5곳이나 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축제인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전국 14곳의 국회의원 재보선은 주인공을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심한 ‘민폐 하객’인 셈이다.
지난달 전남 순천 송광사에 갔다가 삼청교 중심에서 여의주를 문 용머리 돌을 만났는데 이름이 ‘공복’이었다. ‘용생구자(龍生九子)’, 용의 아홉 자식 중에 물을 좋아하는 ‘공복’이 다리가 무너지지 않게 지켜주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사실 개천에서 용이 나도 여의주를 물고 승천해 버리면 용만 좋지, 개천은 뭐가 좋나 싶다. ‘용꿈’이 나쁘다기보다 지역에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공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서울 집중 때문에 생겨났다. 모든 권력이 중앙정부에 집중되면 지역이 무시되기 쉽다. 지방선거는 중앙 권력을 지방으로 나누어 지역 스스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치른다. 지역 권력을 감시하고 지난 4년간의 행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이기도 하다.
지방선거의 주인공은 지방이다. 지금처럼 국회의원 재보선이 지방선거의 이슈를 잡아먹으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흔들리게 된다. 유권자들이 국회의원 재보선에만 관심이 쏠려 우리 동네 구청장·시의원·구의원 후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후보는 후보대로 답답해서 아우성이다. 힘들게 쌓아 올린 한국 민주주의가 개인의 정치적 체급 올리기 때문에 흔들려서야 안 될 일이다.
걱정되는 지점이 또 하나 있다. 이번에 선출되는 구청장이나 광역의원들이 중간에 사퇴하고 2028년에 치러질 총선에 나설 때 말릴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나 구청장은 지역 조직·생활 민원·예산을 직접 다루기 때문에 국회의원 후보로 성장하기 좋은 자리다. 총선에 한번 나왔던 사람이 구청장이 되어 인지도가 높아지면 다시 국회의원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쉽다. 이번 재보선처럼 국회의원 사퇴하고 광역단체장 나가는 건 놔두면서 기초단체장들이 총선 못 나가게 막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선출직 공무원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사직할 권리가 인정된다. 하지만 법적으로 자유롭다고 해도 정치적으로는 유권자와의 약속 위반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임기 도중에 그만두면 추진하던 사업이나 정책의 연속성이 끊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중도 사퇴로 인해 발생하는 재보궐선거 비용도 전액 세금으로 충당된다.
앞으로는 외국처럼 ‘중도 사퇴 시 일정 기간 출마 제한’이나 ‘사퇴 시 선거비용 부담’ 같은 예방 장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이번 지선에서도 후보들은 임기를 끝까지 채운다고 약속하고, 늦었지만 공약에도 집어넣어야 한다. 유권자에 대해 책임지는 정치를 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방선거의 주인공은 지방이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