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약점을 품어 가능성으로
이산들 프리랜서
지하철 노인 배려 안내문·좌석 눈길
정작 카페에 엘리베이터 잘 안 보여
갈수록 도시 다양성 점점 커지는 부산
약자·소수자 같은 도시 사용자 품어야
눈앞의 작은 것 제대로 보는 사람
부산의 미래 바로 설계할 수 있어
바쁜 도시에 살다 보면 절로 몸에 배는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것이 있다. 그중 하나는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줄 서기이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해 좌측을 비워두는 것은 어느새 도시의 공중도덕으로 자리 잡혔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서울에서 일을 시작한 후, 나도 그 속도에 물들었다. 하지만 안전을 고려할 때 한 줄 서기는 권장되는 행동은 아니다. 지하철 역사에도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마시오.”
부산으로 돌아와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다 그 옆에 커다랗게 놓인 현수막을 발견하고는 미소가 지어졌다. “눈치 보지 말고 두 줄로 서세요.” 에스컬레이터 양쪽으로는 발자국이 두 개씩 그려져 있기도 했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한 줄로 비켜서기 어렵다. 아이 손을 잡은 부모도 에스컬레이터 한쪽을 비워두려면 오히려 더 불편한 자리에 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하철에 올라타니 이번에는 각 전동차의 맨 앞과 뒤에 있는 교통약자석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탄 부산 지하철 1호선에는 교통약자석이 4개씩 마주 보게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서울에서 보던 것보다 넉넉한 규모였다. 고령 인구가 많은 부산의 형편을 고려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뿌듯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5월 가정의달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할머니를 모시고 동네의 유명 카페를 찾은 날이었다. 1층에서 함께 빵을 고르고 2층 카페에 오르려던 찰나, 어려움에 맞닥뜨렸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게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한 손으로 난간을, 다른 한 손으로 내 손을 꽉 잡고 2층까지 올라야 했다. 체구도 작고 몸도 가벼운 분인데, 계단을 오르는 내내 손에서 힘이 빠지지 않았다. 나도 진이 빠질 정도였다. 2층은 연휴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여럿 보였다. “서울과 달리 부산에는 멋진 곳에도 어르신들이 많아서 보기 좋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지만, 이내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르내렸을 계단이 떠올랐다. 고층도 아니고 고작 2층뿐이지만, 휠체어는 물론 노인 보행기는 계단 한 칸도 오르지 못한다. 고령 인구가 유독 많은 동네에서 새 단장을 한 카페에 엘리베이터 하나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도시는 늘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변모한다. 부산시 또한 여러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미 맞이한 초고령사회인 부산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4%를 넘어 광역시 중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도시가 됐다. 이와 맞물려 청년인구는 꾸준히 유출되고 있다.
원래부터 관광도시였지만, 최근에는 더 많은 여행자의 사랑을 받으며 외국인 여행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을 이룬 이웃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현상들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도시의 다양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이나믹 부산’에서 ‘Busan is good’이 된 지금, 이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을 품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을까? 고령화는 그 질문의 출발점이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에 대처하는 방식이 곧 다양성을 수용하는 첫 번째 연습이 되는 이유다.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저자 사와다 도모히로는 말한다, “사람은 모두 무언가의 약자이며, 소수자다.” 모든 도시에는 보이지 않는 기본 사용자가 있다. 빠르고, 젊고, 디지털에 익숙하고 몸이 건강한 사람. 계단은 그 사람을 기준으로, 키오스크는 그 손가락에 맞게 설계되곤 한다.
하지만 건장한 청년의 이동권에서 벗어나 보면 시각이 달라진다. 기준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시는 이미 충분히 좁다. 어르신, 휠체어를 탄 장애인, 아이와 함께하는 부모, 무거운 짐을 든 여행자. 설계가 그들을 처음부터 상상하지 않았을 때, 그 좁음은 벽이 된다. 이들 역시 도시가 당연히 품어야 할 사용자인데 말이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고, 청년을 지나 노년을 맞이할 것이다. 지금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어르신의 모습이 먼 훗날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 이를 개인의 서툶으로 넘길 일은 아니다. 도시의 효율이 누군가에게는 긴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불편함을 도시의 과제로 읽어내는 일, 그리고 그것을 정책으로 옮길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일이 남았다. 가장 느린 사람까지 상상하는 도시가 가장 다양한 사람을 품고, 결국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싶은 도시가 되지 않을까. 눈앞의 작은 것을 제대로 보는 사람이 부산의 미래도 제대로 설계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