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격차보다 ‘성과급 격차’ 택한 삼성전자 노조…미래 갉아먹는다
유연한 성과급 vs 영업익 15% 고정 충돌
반도체 산업 특성상 리스크 확대 우려
지난달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가운데 삼성전자 노조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기술 격차’가 아닌 ‘성과급 격차’를 요구하고 나서 논란이다. 반도체 업황 특성상 미래를 준비하지 못할 경우 향후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 협상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성과급 산정 방식을 두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사후조정 절차에서 ‘유연한 보상 체계’와 ‘영업이익 15% 고정 성과급 제도화’가 정면 충돌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협상에서 현행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를 유지하면서 초과 성과분에 대해 특별보상을 추가하는 방향의 제도화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 실적과 업황 변화에 따라 지급 규모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에 방점이 찍힌 구조다.
이는 경영 상황이 악화될 경우 기존 OPI 체계를 중심으로 운영하되 반대로 실적이 크게 개선되는 시기에는 별도의 성과급을 추가 지급하는 방식으로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메모리 사업부의 경우 경쟁사 대비 동등 수준 이상의 지급률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실제 성과급 규모 역시 상당 수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노동조합 측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는 방식의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성과급 지급 기준을 명문화해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노조의 요구안이 사실상 성과급을 ‘고정비화’하는 구조라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주요 테크 기업 가운데 영업이익의 특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성과급 재원으로 배분하도록 명문화한 사례는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경기 변동성이 큰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 고정 성과급 체계는 향후 업황이 꺾이거나 적자 국면에서 경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은 적기에 수조 원 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라며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사실상 의무적으로 배분하는 체계는 위기 상황에서 기업 대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산업계 전반으로 ‘보상 인플레이션’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 성과급 체계는 국내 산업계 전반의 기준처럼 받아들여지는 만큼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모델이 자리 잡을 경우 다른 기업들에도 유사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카카오 영업이익 10%, 삼성바이오로직스 20%, 현대차와 LG유플러스 30% 등 이른바 ‘영업이익의 N%’를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나아가 협력업체들도 영업이익의 일부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나서며 사회적 혼란까지 커지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에서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제도화가 현실화되면 다른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과 공공부문까지 유사 요구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협력사 간 보상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경우 대기업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상대적으로 여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인력난과 비용 부담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총파업은 막아서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반도체 산업 특유의 변동성과 대규모 투자 사이클을 고려한 유연한 성과급 체계가 필요한 만큼 노사 모두 양보해 타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