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 동맹 균열에 커지는 '새 유럽 방위 동맹' 목소리
나토 전 수장·유럽의회 의원 촉구
"미국에 안보 의존, 위험한 도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대서양 동맹의 균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유럽 내부에서 새로운 유럽 방위 동맹 창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전 수장도 유럽의회 의원들도 빠르게 재편되는 국제 질서를 고려할 때 미국에 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면서 유럽 방어를 스스로 책임질 새로운 연합체 창설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8일(현지시간) 독일 일간 벨트와의 회견에서 “우리는 지금 위험한 나토의 해체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유럽 방위 동맹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라스무센 전 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집단방위 조약인)나토 5조와 유럽 방위에 대한 미국의 헌신에 너무 많은 의구심을 제기했다”며 “유럽인들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유일하다. 우리는 자립해야 하고, 스스로 유럽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덴마크 총리 출신으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제12대 나토 사무총장을 지낸 그는 “유럽연합(EU)도 나토도 동맹 내 유럽 축을 강화하는 데 현재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며 유럽은 새로운 방위 계획과 새로운 군사 역량을 필요로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유럽 대륙의 방어를 독자적으로 조직할 준비와 능력을 갖춘 유럽 국가들의 모임인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공식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 연합체에는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지출하는 나토 회원국들만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나토 5조와 유사한 안보 보장을 약속하고, 개별 국가가 공동의 군사 작전을 막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만, 새로운 기구를 만들더라도 나토 자체는 여전히 서방 동맹의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나토는 여전히 우리 방위의 초석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궁극적인 안보 보장은 미국의 ‘핵우산’”이라고 덧붙였다.
라스무센 전 총장은 아울러 우크라이나를 유럽의 새 방위 동맹의 회원국으로 통합시켜야 한다며 “우크라이나는 빠르게 신무기와 탄약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에겐 러시아에 맞서는 ‘방파제’로서 우크라이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덴마크 총리 재임 시절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나토 사무총장 재임 당시에도 동맹 내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옹호하는 등 대표적인 대서양 동맹 신봉자로 꼽히는 라스무센 전 총장은 인터뷰에서 ‘미국 없는 유럽 안보’를 구상해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느끼냐는 질문에 “매우 고통스럽다”며 “어릴 때부터 미국을 존경해왔고, 미국을 자유세계의 당연한 지도자로 여겨왔다”는 심경도 밝혔다.
유럽의회 초당파 의원들의 연합체도 9일 ‘유럽의 날’을 맞아 ‘유럽 방위 연합’의 신속한 창설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고 독일 dpa통신이 전했다.
이들 의원들은 성명에서 “유럽 방위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라고 규정하며 비상 상황 발생 시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 없이도 유럽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휘 체계, 신속대응군 등을 갖춘 새로운 조직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