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반대’ 日 시민, 한국 따라 응원봉·깃발 들었다 [규슈 나우]
평화헌법 개정 추진에 전국 집회
‘한국식 집회’ 모방 새 트렌드로
일본 역대 최다 인원 곳곳 운집
“일 민주주의 성숙 계기 삼아야”
일본의 헌법기념일인 지난 3일 후쿠오카 주오구 케고공원에서 자위대 명시 등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헌법을 지켜라’ 집회가 열렸다. 한 참가자가 집회 도구로 반짝이는 응원봉을 들고 있다.
“한국으로부터 큰 용기를 얻었어요.”
지난 3일 일본 헌법기념일. 후쿠오카 번화가 텐진의 케고공원에서 열린 ‘헌법을 지켜라’ 집회에서 ‘거북이의 하품을 지켜보는 보호자 모임 규슈지부’ 깃발을 든 30대 여성은 지난해 한국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집회를 엑스(X)에서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일본의 상황이 나빠지고 도쿄에서 집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내 주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집회에 참가했어요. 싫은 것을 싫다고 주장하는 건 아주 평범한 일인데 일본에선 잘 하지 않죠. 한국의 집회를 보고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더 많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고양이 뒤통수가 가장 좋은 친구 모임, 고양이와 낮잠 추진위원회 등 재치 있는 문구가 적힌 깃발도 한국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지인들과 함께 제작해 들고 왔다. “돈을 받고 참석한 게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일본에서는 다카이치 정부가 전쟁 포기, 전력 불보유 등을 밝히는 일명 ‘평화헌법’의 핵심인 헌법 9조 개정을 추진하면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일상에서 정치적 표현을 꺼리고 대규모 집회 또한 드문 일본이지만, 개헌 반대 집회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헌법기념일 당일에는 도쿄에서 5만 명이 참가해 역대 최다를 기록하는 등 등 전국 220곳에서 집회가 열려 총 7만 4404명이 모였다. 이날 후쿠오카 집회에서도 비가 내렸지만 주최 측 추산 700명 이상이 모여, 최근 들어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내 전국 집회 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데모 캘린더’도 등장했다. 후쿠오카에 거주하는 회사원이 제작한 데모 캘린더에는. ‘갑니다!’ 버튼이 있고 버튼을 누른 인원 수가 표시된다. 혼자 참가하기 두려운 이들에게 다른 참가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일본 언론은 집회 확산의 이유 중 하나로 데모 캘린더를 꼽기도 했다.
집회에서 만난 후쿠오카 시민들은 지난해 SNS 너머로 한국을 봤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아이돌의 응원봉을 들고 나온 한 50대 여성은 “엑스에서 한국의 집회를 보면서 ‘힘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며 “한국은 현장에서 모두가 단체로 행동했기 때문에 (탄핵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도 그 모습을 보고 깨달은 게 있고 특히 청년들이 많이 움직이고 있다”며 “개헌 반대 의사 표시의 뜻으로 모두가 펜라이트(응원봉)를 들고 모였고, 나도 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자극제가 된 한국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는 시민도 있었다. 39세 남성은 “한국의 집회 뉴스를 보고 우리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자극을 받았으니 한국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며 “앞선 패전의 경험으로부터 반성해야 하기 때문에 개헌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식 집회 모방을 넘어, 일본 사회 속 민주주의에 더 깊은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집회를 주최한 사회활동가 단체 ‘엄브레스’의 하나이 요시히토(36) 씨는 “일본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부럽다’고 말하는 데 그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해 온 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역사가 있고, 거기엔 일본의 가해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맥락을 잊지 않는 형태의 연대가 필요하다”며 “축제 분위기의 집회가 유행에 그치지 않고, 각자가 일상 속에서 사회를 바꾸려는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후쿠오카(일본)/글·사진=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