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익의 뷰파인더] 보이지 않는 감옥, 에코 체임버 탈출하기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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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방송국장

아날로그 유세 편한 기성세대
온라인 콘텐츠 익숙한 청년도

플랫폼 알고리즘 편리함 갇혀
매출 올리는 양극화 노예 전락

검색 기록 초기화·크로스 체크
확증 편향 타파할 나의 무기로

어릴 적 학교 운동장에 놀러 갔다가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교장선생님이 서시던 단상에 어깨띠를 두른 아저씨들이 차례로 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관중 일부가 다 같이 이름을 외치니, 박수 소리와 야유가 운동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른바 ‘운동장 유세’ 현장이었다.

그 시절 유권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미어캣처럼 눈과 귀를 기울였다. 후보들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 무슨 말을 해도 놓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인터넷이나 유튜브가 없던 시절, 신문이나 TV 뉴스 이외에는 후보들의 언행을 직접 보고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때 운동장은 밝기만 한 곳이 아니긴 했다. 사람들을 동원해 인지도를 왜곡하거나 싸움을 하고, 돈봉투를 주고 표를 사는 매표 행위가 횡행했다고 한다. 그래도 자연스럽게 후보가 어떤 공약으로 어떻게 일하겠다고 하는지, 말과 행동을 어느 정도 종합하고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90년대 민주화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공직선거법은 투명한 선거를 치르도록 진화했다. 거리 유세도 여전히 남아 있지만, 최근 선거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공간을 더욱 파고든다. 수많은 유권자들이 다양한 정보가 넘쳐나는 SNS나 영상 플랫폼에 모여 갑론을박을 벌이고, 거기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여기서 큰 문제가 생겼다. 이전에 비해 손쉽게 후보들을 만나고 정보를 파악하는 장점의 이면에 눈과 귀를 가리는 편 가르기 현상이 심화하고 있어서다. 이것이 알고리즘 추천 온라인 뉴스와 영상의 미로 속에 스스로 갇히는 ‘에코 체임버’다. 내 말과 소리가 세상에 나아가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갇힌 공간이라는 의미다. 유권자들이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종이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점점 외면하고, ‘네 생각이 옳다’고 맞장구치는 커뮤니티나 유튜브 콘텐츠에 점점 매몰되는 현상을 표현한다.

그나마 과거 ‘운동장’을 경험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청년 세대는 처음부터 전체를 보기 힘들게 됐다. 청소년과 청년들은 사회생활을 하기 전부터 온라인 공간에서 비슷한 무리의 생각에 갇히기 쉽다. 알고리즘이 그들의 생각이 전체라는 착각에 빠지도록 끝없이 유도한다. 그래야 영상과 광고를 더 많이 시청해 매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최근 20대 남성과 여성의 생각과 가치관이 양극단에 위치하는 이유 중 하나다.

절대다수가 이용하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플랫폼은 철저하게 이익을 추구한다. 공익이나 견제와 균형, 저널리즘 따위는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많은 광고를 보게 할 것인가’가 AI 알고리즘의 유일한 목표다. 그렇게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또래가 많이 본 영상을 지속적으로 추천하는 ‘입소문 시스템’을 강화한다. 절대 ‘필터 버블’ 소우주 밖 은하계를 노출하지 않는다. 그것이 확증 편향인 줄도 모르고, 시야가 점점 좁아져 극단적으로 가짜 정보를 맹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제는 미로를 스스로 탈출할 때가 됐다. 경주마의 눈가리개를 치우고 넓게 보려고 안간힘을 써야 한다. 항상 가동되는 내 안의 ‘레드 팀’이 필요하다. 단순한 노력으로 불가능하다. 습관 자체를 바꿔야 한다.

당장 해야 할 일은, 추천 피드에 의존하지 말고 검색과 시청 기록을 주기적으로 초기화하는 것이다. 자동재생 기능도 꺼야 한다. 알고리즘에만 맡길 게 아니라 내가 주도해 반대 의견을 검색한 뒤 한 건 이상은 읽고 시청하는 습관을 들이자. 유튜브나 네이버 등 한 플랫폼에만 머물지 말고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는 공간과 채널, 커뮤니티를 찾아다녀야 한다. 다른 목소리를 듣는 새로운 계정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건강한 콘텐츠를 잘 가려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어떤 정보든 의심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감정적으로 공감되는 그럴 듯한 주장이지만, 출처와 1차 자료를 가지고 교차 검증을 해보면 근거 없는 경우가 많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콘텐츠는 공유하지 않는 게 낫다. 부산일보TV 등 공신력 있는 영상 콘텐츠를 의도를 가지고 무단으로 재가공해 돈벌이를 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유튜버들도 난무하는 상황이다. 그런 이들이 만든 짧은 영상들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심리적 지배를 당하게 된다.

세상 모든 시스템에는 장점과 단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날로그 운동장 유세와 온라인 공간의 장점만 남길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영화 맨인블랙의 끝도 없이 확장하는 우주처럼, 나만의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태도가 절실하다. 견디기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어느 쪽이든 무슨 근거로 주장하는지 들어는 보고 판단할 일이다.

6·3 지방선거가 달아오르니 온갖 주장이 난무한다. 고귀한 나의 한 표를 쉽고 편하게 던져 버리고 말 일인가.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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