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높은 ‘사용자성 인정’ 기준, 시행 50일 노란봉투‘벽’

박수빈 기자 bysue@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원청과 직접 교섭 ‘노란봉투법’
부산 48건 요청 중 5곳만 수용
거부할 땐 사용자성 판단 절차
하청에 입증 의무… 현실적 ‘벽’
“실효성 없다” 신청 포기 사례도

부산 연제구 부산고용노동청. 부산일보DB 부산 연제구 부산고용노동청. 부산일보DB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 50일이 됐지만 부산에서는 제도가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자성 인정 기준의 높은 문턱과 입증 책임 부담, 복잡한 절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27일 부산 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 따르면 지난달 10일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이날까지 하청 노조가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지노위에 요청한 사례는 2건이다. 이날까지 총 9건이 접수됐으나 1건은 타 지역 지노위로 이송됐고, 나머지 6건은 노조 측에서 신청을 취하했다.

반면 부산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이날 기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한 하청 노조는 48곳에 이른다. 대상 노조는 총 22곳인데, 이 중 교섭 요구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고한 원청은 5곳에 불과하다. 하청 노조와의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원청은 극히 일부지만, 정작 노조 측은 지노위에 사용자성 판단 요청을 넣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달 시행된 노란봉투법을 통해 하청 노조는 원청 사용자에게 직접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원청은 교섭 요구를 받으면 7일 동안 해당 사실을 공고해야 한다. 원청이 공고를 진행하지 않을 경우 하청 노조는 원청이 해당 노조에 대해 사용자성을 지니는지, 이른바 ‘사용자성 인정 여부’를 지방노동위원회 등에 판단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다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는 교섭을 요구한 많은 하청 노조가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으로로 풀이된다. 노조 측은 고용노동부 지침상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범위가 좁다고 지적한다. 또 원청의 사용자성을 입증할 의무도 노조에 있는 만큼 현실적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한다. 이에 노동 현장에서는 노란봉투법의 실효성이 낮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산시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으나 지노위에 사용자성 판단을 요청하지는 않은 한 하청 노조 관계자는 “고용노동부에서 ‘정부는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침을 내리는 바람에 시가 사용자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라며 “자칫 노조 측에 불리한 선례를 남길 수 있는 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해 아직 지노위에 요청을 넣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산 내 기업 수 자체가 적은 것 역시 요청 건수가 적은 것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경우, 노란봉투법 시행 일주일 만에 100곳이 넘는 하청 노조로부터 사용자성 판단 요청을 받았다. 이후에도 요청이 밀려들어 업무가 가중된 상태다. 2023년 기준 서울 내 전체 사업장은 117만 7287개로, 부산(40만 1008개)의 2.9배에 달한다. 부산에 자리한 사업장이라도 본사는 수도권에 있어, 본사 소속 하청 노조에서 원청의 사용자성 입증을 주도하는 사례도 있다.

다만 기업 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제도 자체의 한계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기까지는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법원 1심 △법원 2심 △법원 3심 등 최대 5단계를 거쳐야 한다. 대법원에서 최종 심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원청이 교섭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산 지노위 관계자는 “원청이 교섭 사실을 공고하지 않을 경우, 사용자성 인정 여부의 최종 판결은 대법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서도 “대법원까지 이어지기 전에 노조에서 ‘부당 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지노위에 넣을 수 있는 등 안전 장치는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박수빈 기자 bysu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