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경제] 위기이자 기회 ‘바이오의 역설’
특허 절벽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특허 절벽’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상징한다. 절벽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기감과 달리 한국 바이오 기업들에겐 ‘황금의 10년’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어서다. 이 역설적인 상황의 중심에 특허 만료라는 거대한 변곡점이 있다.
특허 절벽이란 의약품의 독점 판매권이 만료되면서 매출이 벼랑 끝에서 떨어지듯 급감하는 현상이다. 신약 개발에는 10년 이상의 기간과 조 단위 비용이 든다. 법은 일정 기간 독점권을 부여해 이 투자를 보호하지만 기한이 다하는 순간 방어막은 사라진다. 이때부터 저렴한 복제약들이 시장에 진입하며 오리지널 약의 점유율을 잠식한다.
요즘 제약 바이오 업계가 특허 절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만료 시점’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오는 2030년 사이 연 매출 수조 원을 기록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들의 특허가 줄줄이 끝난다.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텔라라’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는 향후 수년 내 약 3000억 달러(약 400조 원) 규모의 시장이 무주공산으로 풀릴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빅파마에겐 매출이 줄 수 있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나 셀트리온 같은 국내 기업들에겐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오리지널 약과 효능은 같고 가격은 저렴한 ‘바이오시밀러(복제약)’를 앞세워 세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과제도 있다. 시밀러 시장 경쟁 심화로 인한 단가 하락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단순 복제를 넘어 효능을 개선한 ‘바이오베터’나 차세대 항암 기술인 ‘ADC(항체-약물 접합체)’ 같은 새로운 모달리티(치료 수단)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