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디테일 집요하게 다듬는 일본의 DNA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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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위의 인문학/정광제



최근 몇 년간 한국인의 일본 관광은 가히 ‘역대급’이다. 한국인 해외여행객 10명 중 3명 이상의 목적지가 일본이었다. 일본을 찾는 전 세계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은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환율이나 유가의 영향도 있겠지만 개인의 취향과 미식, 쇼핑 등 실용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층이 일본 여행의 주축이 되면서 생긴 변화로 읽힌다. 일본에 가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한번 돌이켜보자. 일본에서는 뭔가 작은 디테일이 사람을 잡아끄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다다미 위의 인문학>은 다다미, 란도셀(책가방), 자판기, 이자카야, 기모노, 게다, 노포, 오타쿠, 만화, 빠찡코, 혼욕 등 사소한 세계를 파고든다. 때로는 작은 습관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일본의 생활 문화는 이상하리만큼 압축적인데, 이 책은 차분하게 작은 세계의 두께를 들여다본다. 일본의 된장은 200종이 넘는다. 각 지역마다 자기 생존 방식에 맞는 발효 방식을 독자적으로 진화시킨 것이다.

한국은 갈수록 획일화되고 평준화되는데, 왜 일본은 지역 DNA가 생활 단위로 남아 있을까. 저자는 일본이 하나의 섬나라가 아니라 바다로 연결되고 산맥으로 분절된 거대한 생태계로 본다. 자연 지형이 만든 거대한 분산형 연합체로 상상하는 순간 일본이라는 퍼즐이 풀리기 시작한다. 에도 막부는 중앙집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연방 국가였다는 것이다.

식문화는 대중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다. 일본에서 면 요리를 먹을 때 소리를 내는 것은 전혀 예의에 어긋나지 않고, 오히려 맛있게 먹는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일본 사람들은 면을 후루룩 들이마실 때 공기를 함께 빨아들인다. 그래야 면발이 식지 않고 국물의 향과 온도를 입과 코로 동시에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라멘 장인들조차 “면은 소리로 먹는 음식이다”라고 인정한다.

일본인들은 작은 세계를 깊게 파는 성향이 있다. 종이접기에서 다도, 칼 세공, 장난감 로봇까지 작은 디테일을 집요하게 다듬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 이 DNA가 만화에도 그대로 스며들었다. 우주 전쟁 같은 거대한 이야기조차 머리카락 한 가닥까지 세밀하게 그린다. 일본인들은 만화와 애니로 내면의 우주를 빚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이든 만화로 하면 덜 부담스럽고, 더 솔직해진다. 그래서 일본인에게 만화는 소설, 철학서, 일기, 예능 프로그램을 한데 섞은 만능도구 같은 매체다.

‘촌마게’는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잘 이해되지 않는 사무라이의 헤어스타일이다. 전국시대 이전까지 일본 남성 머리는 다양했는데, 무사 계급이 힘을 갖기 시작하며 머리 모양이 군율의 징표가 되었다. 정수리를 시원하게 밀고, 남은 머리카락을 묶어 말아 올린 ‘마게(상투)’는 실용적이었다. 정수리를 비우면 투구 안이 덜 뜨거웠고, 머리를 단단히 묶어두면 갑옷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촌마게는 일종의 충성 맹세였다. 머리를 깎거나 ‘마게’를 유지하지 않으면 무사의 자격을 박탈했다.

일본의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한국의 생활 문화를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작은 행동들도 어떤 사회적 선택의 결과이자 역사의 흔적을 품고 있지 않을까. 정광제 지음/타임라인/328쪽/1만 90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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