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CCTV 사각지대 노린 각본 ‘가짜 피해자’ 법망 못 피했다
진단서 조작·법정 위증 공모
메신저 증거 포착… 징역형
부산지검 서부지청 전경. 부산일보DB
“내가 폭행한 일은 아예 기억에서 빼버려. 증거가 없으니 우리끼리 말을 맞추면 된다.”
친한 지인을 소개해주겠다며 모인 술자리는 한순간에 범죄 무대로 돌변했다. 폭행을 덮기 위해 현장에 CCTV가 없다는 점을 노린 가해자들은 자신들을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피해자를 폭행범으로 몰았다. 11개월간 피 말리는 재판을 견뎌야 했던 이 황당한 조작극은 결국 법정에서 덜미가 잡혔다.
지난해 1월 7일 오전 1시 부산 북구 덕천동 한 노래방. 30대 남성 A 씨는 동갑내기 친구인 B 씨, B 씨의 여자친구 30대 여성 C 씨 3명와 함께 술을 마셨다. A 씨는 B 씨와 C 씨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 D 씨를 소개하겠다며 D 씨를 불렀다. 술자리가 무르익던 중 이들은 시비가 붙었다. 말다툼은 한동안 이어졌고, 화를 참지 못한 B 씨가 D 씨의 목을 조르며 얼굴을 때렸다. D 씨는 위협을 느끼자 경찰에 신고했다.
D 씨가 경찰에 폭행 사실을 신고하자 A 씨와 B 씨는 당황했다. 이들은 노래방 안에 CCTV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A 씨 등 3명은 “B 씨가 때린 게 아니라, D 씨가 흥분해서 A 씨를 때린 것으로 하자”라고 공모했다.
이들의 ‘주작’은 계속됐다. A 씨는 경찰을 속이기 위해 사건 당일 오후 스스로 배를 수차례 내리치고 목을 긁어 가짜 상처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체 사진을 찍어 담당 형사에게 전송했다. 사흘 뒤엔 병원을 찾아 “폭행당해 아프다”며 의사를 속였다. A 씨는 가짜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아 경찰에 제출했다.
B 씨는 A 씨와 C 씨에게 거짓 증언을 지시했다. B 씨는 자신이 D 씨의 목을 조르거나 때린 사실이 없고, 신체 접촉조차 없었다던 것으로 하자며 A 씨와 C 씨를 입막음했다. A 씨 등의 허위 발언 속에 D 씨는 결국 폭행 혐의로 기소됐고, 법정까지 섰다.
이들의 허위 증언은 법원에서도 계속됐다. B 씨는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A 씨에게 ‘내가 폭행한 것은 기억에서 빼버려라’고 재차 다짐을 받았다. B 씨는 C 씨에게도 SNS 메신저로 ‘목 상처에 대해 무조건 모른다고 해라’며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1심 재판부는 D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 씨·B 씨 등 증인들의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아 신빙성이 떨어지며 증거도 불충분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검찰은 항소를 포기한 뒤 이들을 위증·무고죄로 인지해 보완 수사에 나섰다. 압수수색 결과 범행 공모 내용이 담긴 메신저 대화 내용 등을 발견해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2단독 이유섭 판사는 지난 8일 모해위증, 무고 등의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1년, 위증교사 및 위계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를 받는 B 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위증 혐의를 재판에 넘겨진 C 씨에게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들은 이 범행으로 수사기관의 기능을 훼손하고 사법권의 적정한 행사를 방해했으며 무고로 국가의 적정한 형벌권 행사를 저해하기까지 했다”며 “D 씨는 무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약 11개월을 고통받아야 했으므로 엄벌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