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눈]고립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가 은둔과 고립을 하게 된 계기는 하나가 아니다. 내성적인 천성, 완벽주의적 성향, 우울증이 겹쳐 취직 시도조차 못 하는 20대 후반이 되었다.
완벽주의적 성향은 실패에 뒤따를 꾸중과 원망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흥미가 가는 일조차 ‘이걸 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자기검열 끝에 포기했다. 대학 시절에도 주변 권유로 적응에 실패한 뒤로는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다.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 없으니까.
이런 성향들은 대부분 사회적 시선과 타인의 평가로 입은 상처에서 비롯되었다. 고립의 원인에 사회적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실수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실수를 비난하게 만들었고, 나 역시 깊은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었다. 비난한다고 이미 벌어진 실수가 사라지는가? 그것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도덕적 만족감을 얻으려는 행위에 불과하다. 실수와 실패를 좀 더 너그럽게 바라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함께 알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미디어의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많은 미디어들은 우리를 무기력한 사람이거나 범죄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 묘사해 왔다. 하지만 타인에게 상처를 입었을 때 세상을 미워하기보다 자신을 탓하며 스스로를 가두는 길을 택한 것이 우리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하고 노력하고 있다. 나가기 싫은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겪은 좌절이 반복될까 두려워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려와 공감이다. 미디어가 은둔·고립 청년의 구체적인 삶과 목소리를 입체적으로 담아낼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손현식·부산 해운대구 재송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