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권력 이미지와 예술의 저항-본회퍼와 '네오-아방가르드' 한스 하케
한스 하케, 거주민에게, 2000, 독일국회의사당 중정. 사진: Geoproi Lars
1945년 4월 9일, 목사이자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39세에 히틀러 암살 시도를 포함한 반나치 저항 운동의 죄목으로 독일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21세에 신학 박사가 된 그는 미국 뉴욕 할렘의 흑인 교회를 경험하며, 신학이 현실의 고통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렘의 예배는 자크 랑시에르의 의미에서 보자면, 억압에 저항하여 ‘감각의 분할’을 재배치하는 실천이기도 했다. 그는 그곳에서 고통을 말하는 목소리의 형식을 배웠다.
오늘날 회자되는 “침묵은 악이다”라는 말은 그의 사상을 단순화하여 재구성한 말이다. 그러나 그 문장은 정치 윤리와 동시에 예술의 윤리도 건드린다. 권력의 폭력 앞에서 예술은 침묵해야 하는가, 아니면 발언해야 하는가? 독일의 개념 미술가 한스 하케의 작업은 이에 대답한다. 말하자면, 예술은 권력이 숨기려는 구조를 드러내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하케의 작품은 흔히 ‘정치적 미술’로 불린다. 그는 예술과 삶의 분리를 거부했던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문제의식을 제도 비판을 통해 재연하는 ‘네오-아방가르드’ 작가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현재의 제도와 구조 속에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나치의 유산을 드러낸다. 2000년 독일 국회 의사당에는 ‘거주민에게’라는 제목의 그의 작품이 설치되었다. 이 작품은 의사당 중정(中庭)에 설치된 네온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말은 의사당 정문의 ‘독일 민족에게’(Dem deutschen Volke)라는 구절을 대체하는 것이다. 나치 시대에 ‘민족’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민족 공동체의 이름이 아니라, 특정 집단들을 배제하고 그 배제를 폭력으로 정당화하는 장치였다. ‘거주민에게’라는 구절은 ‘민족’을 넘어 현재 독일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 독일 사회의 주민임을 드러낸다. 하케의 작업은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정치는 누구의 이름으로 말하는가. 이 질문은 본회퍼가 던졌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회퍼의 시대에는 권력이 군대와 경찰, 선전과 검열을 통해 작동했다. 그러나 오늘날 권력은 훨씬 더 복잡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미디어, 자본, 이미지, 문화 산업이 서로 얽혀 새로운 형태의 권력 구조를 만들어낸다. 21세기 동시대 미술에서 한스 하케의 작업은 네오-아방가르드가 취할 수 있는 하나의 급진적 형식이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권력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다움 뒤에 숨을 수 없다. 중립이라는 말은 교묘한 권력의 언어이기도 하다. 4월 9일 본회퍼가 처형된 날, 우리는 깨닫는다. 침묵하는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잘 장식된 또 다른 권력일 뿐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