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동백은 왜 통째로 떨어지는가 - 강요배의 '동백꽃 지다'
강요배, 동백꽃 지다, 1991. 강요배 화백 제공
4월 3일. 이날은 아직 과거가 아니다. 1948년 제주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오랫동안 ‘사건’으로조차 존재하지 못했다. 말해질 수 없었고, 기록될 수 없었으며, 공적인 기억으로 승인되지 못했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인간은 말하고 행위함으로써 공적 세계에 출현한다. 그러나 4·3은 사람들이 말하고 행위하며 서로에게 출현할 수 있었던 공적 세계 자체를 붕괴시킨 사건이었다.
강요배의 ‘동백꽃 지다’는 이 말해질 수 없었던 사건을 그린다. 더 정확히 말해 그것을 ‘보이게’ 한다. 화면 오른쪽, 전경에 한 송이 동백이 통째로 떨어지고 있다. 화가는 꽃이 아직 땅에 닿지 않은 채, 공중에서 멈춰 있는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영원으로 만든다. 왼쪽 후경에는 나무들 사이로 토벌대에 의해 학살당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꽃의 붉음과 피의 붉음이 같은 색으로 화면을 가로지른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사람들은 중심이 아니다. 대신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떨어지고 있는 그 한 송이 꽃이다.
동백은 꽃잎이 흩어지면서 지지 않는다. 통째로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떨어진다. 그 낙하는 자연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끊어진 시간, 중단된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이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다. 그것은 이름 없이 사라진 존재, 불리지 못한 이름들, 끝내 기록되지 못한 삶의 형상이다. 전경의 동백은 한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한꺼번에 사라진 삶들, 제주라는 섬 전체를 뒤덮은 죽음의 시간이다. 이 그림에서 동백은 ‘지금’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은 과거가 아니다. 죽음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도착하고 있다. 다시 말해 폭력은 지속되고 있다. 이때 제주는 더 이상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그곳은 기억이 쌓이고 시간이 스며든 땅, 죽음이 흩어지지 않고 머무는 세계다.
1980년대 민중미술이 현실을 드러내고 고발하는 데 집중했다면, 강요배의 회화는 그다음의 질문으로 나아간다. 그는 묻는다. 폭력은 끝났는가, 아니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가? 이 그림에서 죽음은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상태다. 끝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상태. 폭력은 지나간 사건이 아니며, 떨어지고 있는 동백꽃처럼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앞에서 예술가의 책무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진실을 설명하는 데에 있지 않다. 역사를 정리하는 데에도 있지 않다. 오히려 이미 사라진 것들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그 흔적을 감각 속에 남겨두는 데 있다. 강요배의 동백꽃은 설명되지 않는 죽음이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동백꽃은 떨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깨닫는다. 아직도 떨어지고 있는 이름들을 다시 불러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그 이름들을 충분히 불렀는가?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