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리스크’ 코스피, 자금 유출 많은 대만보다 충격 더 컸다
亞 증시 전반 불안감 확산 속
전쟁 발발 2거래일간 약 20%↓
가상자산 방불 널뛰기 장세
메모리 중심 한국 반도체 산업
핵심 반도체 생산 대만과 달리
경기 더 민감 투자자 ‘줄이탈’
파생상품 거래 비중도 한몫
코스피가 미국과 이란 간 전쟁 발발 여파로 역대 최대 폭으로 폭락해 5100선마저 내준 지난 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국내 증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국내 증시는 하루 폭락, 하루 급등을 반복하며 가상자산 시장을 방불케 하는 ‘극단적 변동성 장세’를 연출하고 있다. 특히 비슷한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도 다른 아시아 증시보다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유독 크게 나타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중동 리스크에 휩싸인 아시아 증시
아시아 증시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으로 평가돼 왔다. 미국 증시의 높은 밸류에이션(평가가치) 부담 속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아시아 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달러 약세와 낮은 인플레이션 기대, 인공지능(AI) 붐에 따른 아시아 반도체 수요 확대 전망 등이 투자 매력을 높인 요인으로 꼽힌다.
아시아 증시의 매력은 수익률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이후 지난달까지 코스피는 48.17% 상승하며 주요국 대표 지수 중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대만 가권지수(20.7%), 일본 니케이(16.91%) 등도 상승세를 보이며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0.49%)과 나스닥(-2.47%) 대비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아시아 증시 전반의 불안감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데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 역시 높아 지정학적 충격이 증시에 더 크게 반영되는 특징이 있다.
실제 미국과 이란 간 전쟁 발발 이후 2거래일 동안 코스피가 약 20% 폭락했고 일본 니케이(7.82%)와 대만 가권지수(7.3%)도 크게 하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 S&P500과 나스닥이 1%도 채 하락하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낙폭은 훨씬 컸다.
■한국 증시, 대만보다 큰 타격 왜?
아시아 증시가 크게 하락한 것은 무엇보다 해외 투자자들의 자금이 빠르게 이탈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8일 블룸버그 통계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펀드는 지난주(3월 2~6일) 중국을 제외한 신흥 아시아 주식시장에서 약 110억 달러 규모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3월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자금 유출이다. 대만에서 가장 큰 금액인 79억 달러가 빠져나갔고 한국(16억 달러), 인도(13억 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블룸버그는 아시아 증시 하락의 배경으로 중동 리스크와 원유 공급 불안을 지목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대만보다 한국 증시의 낙폭이 컸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자금 유출 규모는 대만이 훨씬 컸지만 증시 타격은 오히려 한국이 더 크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양국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만 증시는 글로벌 파운드리 기업인 TSMC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TSMC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는 핵심 기업으로 엔비디아와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의 첨단 칩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반면 국내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중심 구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메모리 가격은 경기 흐름에 따라 크게 변동하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될 경우 글로벌 투자자들이 경기 민감 산업 비중이 높은 시장에서 자금을 더 빠르게 줄이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질 경우 핵심 반도체를 생산하는 대만보다 메모리 중심의 한국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셈이다.
국내 증시의 구조적 특성도 변동성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국 시장은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 거래 비중이 높은 편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선물 매도가 확대될 경우 프로그램 매도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며 현물 시장에서도 급락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또 대만 시장은 글로벌 장기 자금 비중이 높은 반면 한국 시장은 단기 트레이딩 자금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롤러코스터 증시, 향후 전망은
국내 증시가 중동 사태 충격으로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빚투’(빚내서 투자) 자금과 ‘대기 자금’은 오히려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미국과 이란 전쟁이 증시를 처음 덮친 지난 3일부터 변동성 장세가 이어졌던 사흘간 매일 기록을 갈아치웠다. 낙폭이 과도한 데다 펀더멘털과 증시 모멘텀이 근본적으로 훼손되지 않았다는 판단 아래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투자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증시 진입을 준비하는 대기 자금 성격의 투자자예탁금도 사상 최대 수준인 130조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수 하단이 지지되고 있는 만큼 향후 중동 사태가 안정될 경우 빠르게 회복될 수 있는 신호로 해석된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투자 기회가 왔다는 시각과 신중해야 한다는 전망이 맞선다.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되고 외국인 자금이 다시 유입될 경우 반등할 수 있지만 반대로 위험 회피 심리가 장기화될 경우 변동성 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