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용기에서 민주주의의 보루로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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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 저항/서재호
1991년 ‘애국군인’ 사건 재조명
문재인 전 대통령, 당시 담당 변호사
부산일보가 억울한 사연·피해 첫 보도
12·3 내란 때 장병의 소극적 저항 연결

25일 부산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 모습. 하마터면독립출판협동조합 제공 25일 부산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 모습. 하마터면독립출판협동조합 제공
1991년 <애국군인> 사건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소극적 저항>의 서재호 작가가 평산책방에서 만나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저자 제공 1991년 <애국군인> 사건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소극적 저항>의 서재호 작가가 평산책방에서 만나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저자 제공

1991년 <애국군인> 사건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소극적 저항>의 서재호 작가가 평산책방에서 만나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저자 제공 1991년 <애국군인> 사건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소극적 저항>의 서재호 작가가 평산책방에서 만나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저자 제공



서재호 작가가 저자와 만남에서 저서에 사인을 해주고 있는 모습. 하마터면독립출판협동조합 제공 서재호 작가가 저자와 만남에서 저서에 사인을 해주고 있는 모습. 하마터면독립출판협동조합 제공

1991년 발생한 ‘애국군인’사건. ‘그런 사건도 있었나’라며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시 억울하게 당했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고문과 감금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상했고,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통을 당하고 있다. 35년 만에 그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서재호 씨가 사건의 실체와 가치를 전하는 <소극적 저항>을 출간했다.

1991년 부산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대한민국 군대가 ‘정권의 시녀’에서 ‘국민의 군대’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군 내부에서 제기한 최초의 목소리였다.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병영 내 구타는 야만적인 행위이다’ ‘군인의 인권은 시민의 권리와 같다’ 등 주장을 담은 작은 유인물을 만들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선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애국군인’을 만든 이들은 기무사에 의해 거대한 ‘용공조직’으로 둔갑한다. 순식간에 체포돼 알 수 없는 장소에 감금됐고, 구타와 고문 속에서 언제 나갈 수 있는지, 여기서 죽는 건지 엄청난 공포에 시달렸다.

저자는 기억조차 떠올리기 싫은 35년 전의 사건을 책으로 낼 생각이 없었다. 2025년 서울에서 대학다니던 둘째 딸이 졸업을 앞두고 부산 집을 찾았고, 거실에서 우연이 ‘애국군인’ 사건 자료를 본 것이다. 퇴근하는 아버지를 붙잡고 딸은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 딸은 질문지를 준비하겠다며 다음날 아빠와 정식 면담을 요청했다.

이 책은 사흘 동안 딸의 질문과 아빠의 답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저자에겐 30여 년간 애써 피한 아픔과 고통을 다시 직면하는 일이었다. 이제 딸이 사건 당시 아빠의 나이가 되며 이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싶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애국군인’은 1991년 군 복무 중인 3명의 대학생과 군대 밖 학생들이 5번 정도 발행했다. 주로 병사들이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급진적이거나 국가에 위협이 될 내용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시대적 환경이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1990년 보안사 윤석양 이병이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고, 기무사는 조직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애국군인’ 사건은 이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 셈이다.

고 박종철 학생처럼 아무도 모르게 끌려가 고문받다 사망하는 사건이 이었기에 저자는 5일간 식사는커녕 물 한 모금조차 먹지 않으며 변호사 접견을 요구한다. 자신이 감금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변호사와 만날 수 있었고 가족에게 자신의 구금 소식을 전했다. 20일간의 조사 끝에 군부대 영창으로 이동했고, 매일 14시간씩 얼차려에 가까운 자세를 강요당해 건강이 급속히 악화했다.

재판이 열렸지만, 검사와 판사는 사전에 대본을 짠 것처럼 같은 주장으로 몰고 갔다. ‘친북 성향의 운동권이 군대를 붉게 물들이기 위해 지하활동을 했다’라는 것이고, 결국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1년 6개월 만에 출소한 후 1993년 민간인 대통령이 탄생하며 조작된 민주화운동 사건의 피해자들이 복권되기 시작한다. 제적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책의 후반부는 저자에게 가장 아픈 구석인 후배 권대현 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의 동아리 직속 후배이자 저자의 권유로 간행물 제작에 참여했는데 기무사와 영창을 견뎌내지 못하고 정신을 놓아버린다. 8년 만에 후배를 만나지만, 얼굴에는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기묘한 모습이었고, 책상 위 풍경은 마치 영창처럼 각을 맞추고 있었다. 후배는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군 영창 안에 갇혀있었다.

이 사연이 부산일보를 통해 처음으로 알려졌고, 정신과 전문의를 비롯해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35년째 권대현 씨는 정신질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지난 35년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우리의 활동이 무얼 남겼을까”라고 물었다. 그런데 2024년 12월 3일 마침내 답을 찾았다. 비상계엄의 밤, 상부의 명을 받고 국회에 출동했던 젊은 군인들이 시민들 앞에서 머뭇거리며 부당한 명령에 소극적으로 저항한 것이다. 1991년의 ‘애국군인’이 2024년 12월 3일 ‘애국군인’을 도왔던 것이 아닐까. 서재호 지음/하마터면독립출판협동조합/244쪽/1만 80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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