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북(극)항(로) 시대를 위한 대비
이호진 경제부 선임기자
20년 전 북항 재개발 종합계획 보고
엑스포 무산 후 2단계 사업 동력 상실
2032 인정엑스포 유치 제안 흥미로워
북극항로 시대 대비 북항 전략 고민을
딱 20년 전인 2006년 12월 27일 부산항만공사(BPA) 대회의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참석해 ‘부산항 북항 재개발 종합계획 보고회’가 열렸다. 노 대통령은 철조망에 막혀 접근할 수 없던 바다를 시민에게 돌려주고, 친수공간 위주로 재개발할 것을 지시했다. 3단계로 나눈 이 사업 중 1단계 사업은 기반시설 일부가 2023년 3월 준공됐다. 방파제와 공원 등 남은 기반시설은 내년까지 준공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1단계 사업 속도도 빠르진 않지만, 2030년 마무리짓겠다던 2단계 재개발 사업은 아직 사업계획조차 고시하지 못한 상태로 시간만 흐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2030월드엑스포’ 개최 무산이다. 북항 2단계 재개발 지역을 엑스포 무대로 활용하려고, 2024년 착공, 2030년 기반시설 준공이라는 빠듯한 계획을 짰었다. 하지만 2023년 11월 개최지 투표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119 대 29라는 충격적 패배를 겪으며 모든 계획이 꼬여 버렸다. BPA가 2023년 12월 착수한 사업계획 수립 용역은 사업성 재검토를 명분으로 중단됐다 지난해 2월에야 재개됐다. 북항 2단계 재개발 사업은 기존 시설을 이전하고, 보상비를 지급하는 데 드는 비용 때문에 조성 원가가 높다. 수익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여기에 시간이 갈수록 급등하는 원자재 가격과 금리 인상, 부동산·건설 시장 냉각 등도 이 사업 전망을 어둡게 하는 배경이다.
원도심 통합 재개발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2단계 사업은 오히려 이런 특성 때문에 이해 관계자가 다양하고, 협의와 의견 조율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 BPA 홀로 시행했던 1단계 사업과 달리 2단계에는 부산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코레일 등이 BPA와 공동 사업자로 참여 중이다. 경부선 부산진~부산역 구간 입체화(덱 건설), 55보급창 이전 등 여러 기관이 관련된 이슈가 많다. 어찌 됐든 사업자 컨소시엄은 올 하반기까지는 사업계획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북항 재개발 사업이 이렇게 느리게 진행되는 와중에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연말 부산에 왔다. 대통령과 장관은 북극항로 시대에 대비해 정책·산업·연구가 어우러지는 클러스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상지가 어디일지 궁금해 하는 많은 사람들은 클러스터를 조성하기에 적합한 땅이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 해운 대기업, 해양 금융·법률·정보 서비스 기업, 연구기관을 집적시킬 만한, 접근성 좋고 넓은 땅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디고 미진한 재개발 사업 현실에, 막상 클러스터를 구축할 적정 부지가 없는 미스매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지난달 〈부산일보〉가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 흥미로운 주장이 나왔다. 유치에 실패한 등록엑스포 대신, 대전 과학엑스포와 여수 해양엑스포를 잇는 인정엑스포를 2032년 북항 2단계 부지에 유치하자는 제안이었다. 인정엑스포는 개최 요건이 등록엑스포보다 덜 까다롭고, 주제 특화형으로 운영해 유치 문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1993년 대전, 2012년 여수에서 엑스포를 열었다. 북극항로 시대에 대비한 해양수도권 조성이 국정과제로 추진되고 있는 만큼 친환경·스마트를 기본으로 하는 해양, 물류, 항만 등의 주제로 엑스포를 부산에서 개최한다면 충분한 명분이 있다는 얘기였다.
2032년 개최하려면 준비 작업과 유치 신청을 내년까지 완료하고 2028년 개최지 선정을 기다려야 한다. 개최지로 선정되면 3년여 기간 북항 2단계 사업 부지에 다양한 기반시설이 구축된다. 사업 기간이 늘어지며 사업비도 동시에 늘어나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데드라인’이 필요하고, 상대적으로 유치가 용이한 인정엑스포 같은 국제행사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번 실패한 등록엑스포에 다시 매달리며 더 불확실한 가능성에 시간을 허송하는 것보다 실리적인 대안이라는 논리다. 여수엑스포 사례로 보면 기반시설 예산도 10조 원가량 투입돼 현재 북항 2단계 사업 예산 4조 7600억 원의 2배다.
이것도 정답이 아닐 수 있고, 더 나은 제안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활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북항에 어떻게 하면 숨결을 불어넣을지 다양한 상상과 제안이 나왔으면 좋겠다.
북극항로 거점 부산이 되려면 북항이 글로벌 해양 비즈니스의 거점으로 굳건한 위상을 가져야 한다. 오는 26일 개항 150주년을 맞는 부산항 역사상 가장 큰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동트기 전 가장 어두운 시간이 지금일지 모르겠다. 부산과 부산항의 특성에 기반한 유연한 대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jiny@busan.com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