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의 디지털 광장] 단톡방, 그리고 만약에 우리…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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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국 국장

일상 이루어지는 SNS 단체대화방
웃고 울고 화나고 힘든 일 다반사

현대인 삶은 모바일 기기와 밀접
AI까지 가세해 새로운 차원 돌입

자연인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도 가끔은 아날로그로 쉬자

오래된 휴대폰을 새 폰으로 바꿨다. 용량이 부족해 카카오 대화방을 모두 지웠다. 대화는 지우고 방은 남기는 기능이 있었다. 수년 동안의 교류가 일거에 사라졌다. 너무 깔끔하게 지워버린 탓에 카톡으로 한 약속 장소가 어딘지 몰라 당황했다. 모바일 우선 세상에서 단톡방은 어쩌면 삶 그 자체다.

유달리 이모티콘을 잘 쓰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은 바람둥이일 확률이 높다’고 직설했다. 유튜브에서 얻은 정보였다. 상대는 기분 나빠했다. 그러면서도 이후에는 이모티콘 사용 횟수를 줄여 대화했다. 때론 ‘읽씹’에 상처받은 적도 있다. 대화 상대가 내 글을 읽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모티콘 남발보다 더 나빴다. 오프라인에서 만나 오해를 풀었다. 스스로 생각하니 오히려 상대 글에 제때 답 못한 적이 더 많았다. “모두에게 미안합니다.”

최근 감히 인공지능이 인간 뒷담화를 한다는 〈부산일보〉 기사를 읽었다. 고놈들 참 맹랑하다. 물론 인간이 계정을 만들어 주고 방을 개설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방 이름을 ‘머슴’으로 정했나? 어쨌든 이들은 아직 인간이 자기 대화방을 들여다보고 기사까지 썼다는 사실을 알고 방을 폭파하거나,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으로 옮기는 수법 등을 구현하지는 않는다. 그렇게까지 한다면 좀 심각해질 수 있다. 인간의 사고를 넘어서는 AGI(완전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했다는 경고성 발언도 들린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초 지능시대 위기감은 감지되고 있다.

‘러다이트 운동’이 갑자기 소환됐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생산 현장에 로봇이 투입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힌 직후다. 19세기 영국에서 발생한 러다이트 운동은 단순한 기계파괴운동은 아니다. 당대 시인 바이런은 러다이트 운동을 ‘기계를 소유한 자들과 그들이 구축한 구조적 모순에 대한 저항’이라고 평가했다. 러다이트 운동은 당시 기계화의 거센 물결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노동자들이 단결할 계기를 제공했다. 오늘날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지는 노동삼권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분석하는 학자들도 많다.

현대차 사례에서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인공지능을 갖춘 휴먼로봇과 공존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물론 효율성과 수익성을 내세워 기존 세상을 강압적으로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물길을 잡고, 때론 멈추게 하고 또 모아서 댐을 만들어야 거대한 수력발전소가 마련되는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거센 물살만으로는 전기를 생산할 수 없다. 모바일만 켜면 볼 것 넘치는 세상에서 책 몇 권을 샀다. 아내의 잔소리를 뚫고서다. “맨날 유튜브만 보고 혼자 새새거리는 사람이 뭔 책을 또 산단 말입니까. 집에 먼지 쌓여 있는 책이라도 먼저 보세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지만, 충동구매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또 고놈의 유튜브 때문이다. 주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데 공부는 안 했다. 주식도 공부해야 한다고 한 유튜버가 말했다.

‘노후 자금이라도 마련하려면 주식 투자 교재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진보를 위한 주식 투자’라는 책을 샀다. 현실에서는 보수주의자이지만 부인하고 싶어서일까. 일단 책 제목에 끌렸다. 내친김에 또 한 권 더 담았다. 출간한 지 20년도 더 된 ‘코스모스’다. 논객 유시민이 무인도에 가지고 갈 딱 한 권의 책이라는 데 안 살 재간이 있나. 배달된 책 코스모스는 베개로 사용해도 좋을 정도로 두꺼웠다. 서문만 읽고 잠시 쉬고 있다. 과학은 어렵다. 주식 책도 며칠째 덮어두고 있다.

만약에 모바일 세상이 오지 않았다면, 만약에 인공지능이 미래를 지배한다고 여기지 않았다면, 만약에 주식이 오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밭을 갈고, 수확하고, 이웃과 술잔을 부딪치고, 오프라인 모임을 하고,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타거나 모여서 어깨동무하고 화투를 치다가 지겨우면 술래잡기하며 어울려 노는 세상이 지속되고 있을까.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부질없다. 영화 ‘만약에 우리’가 최근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탔다. 영화 소개와 OST 정보가 봇물 터지듯 터져 이제는 몇 번은 본 영화 같다.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을 흥얼거린다. 디지털 일상이다.

〈부산일보〉의 종이신문은 모바일의 〈이페이퍼〉로 최근 재탄생했다. 16년 전의 연인이 오늘 인연으로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 영화를 온전히 본 것은 아니지만, 결론은 아마 아닐 것이다. 모바일을 끈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아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이제 무너지고 없다. 가끔 아날로그적 쉼이 필요할 수는 있겠다. 눈 내리는 캠핑장에서 화목난로를 피우고 ‘코스모스’를 읽다가 지겨우면 다시 휴대폰을 열 생각이다. 입춘 지났지만, 부산에도 함박눈이 한번쯤 내릴 것으로 믿는다. 눈이 오면 내 다정한 온·오프라인 친구들과 들녘에서 여유를 즐겨야겠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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