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양 사고 대응, 훈련의 질이 생존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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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성 한국선급(KR) 협약심사팀장

전환성 KR 협약심사팀장 전환성 KR 협약심사팀장

대형 재난에서 인명 피해 규모는 장비 수준이나 매뉴얼 완비 여부보다, 대응 타이밍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해 3월 경북 의성·안동 일대 대형 산불은 강풍으로 불길이 급속히 확산되며 현장 통제가 어려웠고, 그 결과 피해가 빠르게 확대된 사례로 기록됐다. 이는 일정 시점이 지나면 현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응 수단과 판단 폭이 급격히 좁아진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산불 전개 양상은 밀폐된 환경에, 대피 수단도 제한된 선박 화재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선박 화재도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 연기와 고열로 현장 접근이 급격히 제한되며, 이후에는 피해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대된다. 이 때문에 해운업계는 선박에서 소화 훈련을 할 때 절차 위주 훈련에 머무르기보다, 초기 대응 한계를 얼마나 신속히 인식하고 상황에 맞게 대응 전략을 수정할 수 있느냐가 인명 피해 규모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은 지난해 11월 열린 제40차 해양사고방지 세미나에서도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이 세미나에 참석한 김성범 해양수산부 장관 직무대행을 비롯한 유관기관 관계자 약 200여 명은 반복되는 화재·침몰 사고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면 평상시 실제 상황을 반영한 실질적인 비상훈련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데 공감했다. 특히 한국해양수산연수원 채병근 교육본부장은 “선박 화재 현장에서 조기 대응 실패 시 즉각 고정식 소화설비 사용으로 전환하는 등 보다 현실적인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며 현실과 괴리된 훈련은 단순 절차에 그칠 뿐이라고 지적했다.

고정식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는 기관실을 밀폐하고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방식이어서, 구역 내에 인명이 잔류하면 치명적이고, 주요 설비 손상을 일으키므로 보통 최후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정식 소화설비 사용을 주저한 채 선원을 중심으로 한 화재진압을 반복 시도하다 결정적인 대응 전환 시점을 놓쳐 선박 전손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 과정에서 연기 확산과 시야 상실, 고온 노출로 선원 안전이 위협받고, 현장 철수나 대응 방식 전환에 대한 판단이 지연되며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이는 단순한 초기 대응 실패가 아니라, 판단 전환 지연에서 비롯된 구조적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선박검사기관인 한국선급(KR)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선박 화재 대응 선원 비상훈련’ 교육 영상을 제작한 바 있다. 해당 영상은 화재 진압 시도 이후 실패 인지, 현장 재평가, 즉각적 퇴각, 고정식 소화설비 사용 결정으로 이어지는 의사결정 흐름을 단계적으로 구현해, 선원의 위험 노출을 최소화하고 화재를 조기에 격리·차단하는 과정을 실제 상황에 가깝게 보여준다.


이 영상은 공개 이후 국내외 해운사와 유럽 항만국통제(PSC) 관계자들로부터 실효성 높은 교육 자료라는 평가를 받으며 선내 정기 교육과 PSC 수검 대비 자료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재난은 그 특성상 완전히 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철저한 사전 준비와 교육을 통해 인명 피해와 사고 규모는 충분히 줄일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규정 강화나 장비 보강 못지 않게, 현장 판단력을 강화하는 교육의 질이 생존 여부를 좌우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위기 상황에서의 판단력은 단기간에 형성되지 않는다. 평상시 현실에 가까운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체득해야만, 위기의 순간 본능처럼 작동할 수 있다.

이제는 형식적인 절차 중심 훈련에서 벗어나, 실제 사고 상황을 전제로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실전형 교육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반복되는 해양사고 속에서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 기반한 교육훈련이 해양 안전을 떠받치는 핵심 기반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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