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가열된 원전 논쟁, 첫단추는 '신뢰'
김백상 지역미래팀장
에너지 논쟁, 대화 없이 각자 주장만
유리한 정황과 논리를 끌어와 결론내
'굴욕계약'·'숨은 비용' 논란 등도 터져
불신 받는 상대이면 건설적 논의 불가
지난해 12월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업무보고가 있었다. 김성환 장관이 원전 정책 관련 답변을 하려 하자, 이재명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이 대통령은 “(김 장관 말은) 민주당 소속이라 못 믿겠다”는 농담을 하더니 “당적 없는 사람이 답해라”고 말했다.
원전만큼 가열된 논쟁도 드물다. 친원전이든, 탈핵이든 논쟁에 뛰어든 이들은 상당한 신념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처럼 AI 열풍에 친원전 목소리에 힘이 실릴 때도,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탈핵이 대세를 이뤘을 때도, 늘 원전 논쟁은 거칠고 뜨거웠다. 각자가 핏대를 높이고 있는데, 이미 당파적 색깔이 묻은 김 장관이 아무리 논리적인 이야기를 한들 상대 진영을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어 이 대통령은 “과학을 논하는데,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냐”며 건설적인 토론을 하자고도 주문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관련 논쟁은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유동적이다. 그리고 과정이 복잡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근거를 끌어오고 논리를 만들어, 결론에 이르게 된다.
원전이 싼 에너지인가? 싸다면 얼마나 저렴한가? 쉽게 답을 할 수 없다. 신재생에너지와 비교해 보자. 우리나라에선 원전이 훨씬 저렴한 에너지이지만, 서유럽에선 오히려 신재생이 더 싼 곳도 있다. 원료비나 기후 환경 같은 다른 외부 요인이 이유가 될 수 있다. 더 본질적인 것은 전력망 형태나 전력 공급 운영 방식 등이다. 전력 인프라를 어떻게 구성했는가에 따라 에너지별 발전 단가는 큰 차이가 난다. 발전소의 효율성은 정책 방향에 따라 유동적으로 결정되는 셈이다.
만일 우리나라가 대규모 발전에 적절한 전력망을 계속 강화하면, 원전의 경쟁력은 더 올라갈 것이다. 반대로 신재생 에너지망에 적합한 전력망을 구축하고 투자하기 시작하면, 신재생의 발전 단가는 떨어지고 원전은 올라가 언젠가는 경쟁력이 역전될 수 있다.
그러나 다수는 복잡하고 유동적인 에너지 문제를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접근한다. 고정불변의 명제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면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어떤 이는 2023년 탈핵에 앞장선 독일이 전력 수급 문제로 프랑스로부터 전기를 수입한 것만 보인다. 다른 이는 2022년 원전 강국 프랑스가 원전 가동률 문제로 독일에서 전기를 수입한 것을 강조한다. 실제론 유럽에선 전력을 수입하고 수출하는 일이 흔해, 단일 사건으로는 그 의미를 판단하기 어렵다.
에너지 문제의 복잡성과 변동성을 이해하더라도, 건설적인 논쟁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상대를 신뢰할 수 있어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2024년 7월 한국은 체코의 원전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원전 당국은 “UAE 이후 15년 만의 수주”라고 환호했다. 그리고 지난해 원전 수출을 둘러싼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굴욕 계약’이 드러났다. 거액의 기술 사용료와 향후 SMR 등을 포함한 원전 수출 시 미국 기업의 검증 의무화 등이 명시된 반영구적인 계약이었다. 원전 당국이 성과는 자랑하고 불리한 내용은 감춰왔던 것이다.
지난 20일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부담금을 13년 만에 인상했다. 경수로형 부담금의 경우 쓰고 남은 핵연료 다발당 처리 비용이 2배 가까이 인상돼 6억 원을 넘어섰다. 이런 식으로 원전 사후처리비용이 오르다 보니, 한수원이 부담해야 할 연간 처리비용이 한 번에 3000억 원 정도 늘어나게 됐다. 수년이면 조 단위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결국 발전 단가에 영향을 줄 것이다.
지난 13년 동안 원전 당국은 이런저런 이유로 비용 인상을 외면했다. 사용후핵연료를 함부로 버릴 수 없으니 반드시 현실화가 필요한 비용이었다. 심지어 2023년엔 산정위원회를 열고 2배 이상 인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놓고도, 고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원전에 ‘숨은 비용’은 없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탈핵 진영은 원전의 낮은 발전 비용을 유지하려 비용 인상을 미뤘다고 주장한다.
불리한 계약과 필요한 비용을 애써 감추는 것은 친원전, 탈원전과는 무관한 일이다. 신뢰의 문제다. 가뜩이나 가열돼 대화가 안 되는데, 당국이 내놓은 자료들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지금도 추가 원전 건설 같은 뜨거운 감자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이대로라면, 원전 당국과 탈핵 진영은 서로가 각자 주장만 펼치다 결국 힘의 논리로 대한민국 에너지의 미래가 정해질 듯하다. 대통령의 지적대로 네 편, 내 편 없는 대화가 간절해 보인다. 그리고 대화의 시작은 믿을 수 있는 상대가 되는 거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