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지워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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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뒤늦게 본 연상호 감독의 '얼굴'
아무도 그녀를 본 적 없는데도
각자의 잣대로 재단하기 바빴다

연상호 감독의 영화 '얼굴'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연상호 감독의 영화 '얼굴'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평소 영화를 보고 나면 늘 “그냥 그랬어”라던 친구가, 웬일로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배우 박정민의 열혈 팬이라 극장에 간 것을 알았기에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친구는 영화의 주제와 연상호 감독의 연출력까지 들먹이며 흥행을 단언하기까지 했다. 그쯤 되니 도대체 어떤 영화기에 친구의 마음이 움직였는지 궁금해졌다.

친구의 강력한 추천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서 영화 ‘얼굴’을 보지 못했다. 제작비 2억 원의 저예산 영화라 상영관 확보가 어려웠던 건지, 바쁜 일상에 치인 탓인지 영화는 곧 기억에서 잊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친구의 장담대로 흥행에 성공했다. 소규모 자본의 한계를 극복하고 백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물론, 제작비 대비 50배의 수익이라는 압도적인 성과를 기록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영화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고 해서 얼른 찾아보았다. 영화는 40년 만에 백골로 돌아온 어머니 ‘영희’(신현빈)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시각장애를 가진 전각(篆刻) 장인 ‘영규’(권해효)는 아내가 타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무덤덤하다. 그런 아버지 곁에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유골을 마주하게 된 아들 ‘동환’(박정민)은 당혹스럽다. 동환은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자식 된 도리를 다하고, 어머니와 관련된 일을 서둘러 매듭짓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머니를 기억하는 이들을 마주하며 그녀의 삶과 죽음이 평범하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영희를 기억하는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녀가 “못생겼다”고 증언한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1970년대 과거로 시선을 옮긴다. 시각장애인 영규가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었던 시절, 오직 영희만은 그에게 온기를 건넸다. 그런 그녀에게 영규의 마음이 기우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게다가 주변에서 영희가 “절세미인”이라고 부추기니 영규는 그녀가 운명이라 확신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영희의 얼굴이 “괴물 같다”는 말을 전하면서 평화는 깨진다. 앞을 볼 수 없기에 아름다움이라는 환상에 매달렸던 그에게 아내의 못생긴 외모는 재앙과도 같았다. 결국 세상이 자신을 농락했다는 배신감 속에 영규의 분노가 폭발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서늘한 지점은 정작 영희의 얼굴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희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만드는데, 이는 70년대 청풍피복에서 ‘시다’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지워진 얼굴과 궤를 같이한다. 산업화의 영광 속에서 그들의 노동은 대체 가능한 부속품으로 폄하되었고 존재는 망각되었다.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영희의 얼굴은 현대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간 여성 노동자들의 초상을 소환해낸다. 우리가 끝내 보지 못했던 그녀의 얼굴이 곧 시대의 외면 속에 지워진 이들의 실체였던 셈이다. 이 지점에서 시각장애를 가진 영규가 갈망해 온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의 정의 또한 처참히 무너진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무엇을 본다고 믿으며, 무엇을 기어이 외면하려 하는가. 아무도 영희의 얼굴을 본 적 없고 보려는 의지조차 없었지만, 모두가 각자의 잣대로 그녀를 재단하기 바빴다. 결국 영화는 보지 않고도 안다고 믿었던 이들의 오만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음을 폭로한다. 그래서 영화의 엔딩, 한 장의 사진으로 마주하는 영희의 얼굴은 경악을 넘어 지독한 씁쓸함을 남긴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은 미추(美醜)를 가리는 영화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보지 않았음을 고백하게 만드는 영화다. 영희의 얼굴을 묵묵히 응시할 때, 비로소 편견과 조롱에 가려졌던 한 사람의 실존을 마주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기어이 외면했던 얼굴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요구하는 진정한 ‘보기’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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