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의 디지털 광장] 어제보다 오늘이 낫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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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 미래를 점치던 숱한 전망
어떤 것은 맞지만 다른 결과도 도출

금새 사라진다던 신문 가치 재발견
가까운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

소행성 충돌같은 AI 등장 지각 변동
종말 걱정보단 오늘에 충실한 정책

한때 어설픈 채식주의자 노릇을 한 적이 있다. 한때라고는 하지만 따져 보면 11년 정도 고기를 끊고 살았으니 짧지만은 않다. 몇 년 전부터 태도가 바뀌어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한 주에도 서너 번 돼지국밥집을 갔다. 한 선배가 “그동안 어찌 참았누? 혹 집에서 몰래 먹은 거 아니가?”라고 물을 정도였다. 10년 전 느낀 고기 맛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채식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습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신문을 보는 습관 이야기다. (종이)신문업계 종사자로 평생을 살았다. ‘종이신문은 곧 사라진다’ ‘디지털 시대가 온다’ ‘신문은 사양산업이다’ 등등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신문사들이 근 10년 이상 화두로 삼고 있는 주제가 있다. 범상치 않은 주제였지만, 어제의 수많은 고민은 현상유지의 오늘과 겪지 않은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위기감은 무뎌졌다. 또 새로운 ‘디지털 전략’으로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는 자기 만족도 여기에 한몫했다.

신문업계 시니어들은 대체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역시 신문은 종이로 읽어야 해. 침 발라가며 한 장 한 장 넘기는 맛이 있어.’ ‘우리는 고유문자를 가진 위대한 민족이야. 읽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길러야 하는데 신문만 한 매체가 어디 있나?’ ‘인터넷 뉴스는 중구난방이야. 가짜뉴스를 어떻게 구분해? 신문은 편집을 하지. 어젠다를 던져주는 거야. 사람들은 이것을 더 좋아할 걸?’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종이신문은 오래갈 거야. 누가 신문이 망한대. 쓸데 없는 소리라곤.’ ‘봐 바 디지털이 돈이 되냐고? 어차피 돈이 안 되잖아. 우리나라는 뉴스가 공짜인데 뭐가 되겠어?’

신문의 미래를 다들 고민하고 걱정했지만 언론사 선배층 ‘범생’의 수준은 이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언론계 지각이 급변하고 있다. ‘방송마저 무너지고 있다’가 최근 몇 년 전의 상황이다. 공룡 같던 포털도 흔들리고 있다. 유튜브가 언론의 자리를 차지해 여론을 지배하고 있다. 포털의 검색시장은 너무나도 똑똑하고 다양한 인공지능(AI)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있다. 오락 분야는 넷플릭스, 왓차, 티빙 등 OTT가 떡하니 차지했다.

미디어 시장이 용광로처럼 들끓는 와중에서도 신문은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며 일단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문 사랑이 유독 찐한지, 우리나라 신문시장만 독특한 것인지 분석은 학자들이 해야겠다. 독일 지역신문의 디지털 전환 사례를 보기 위해 꾸린 ‘2019년 독일언론 신사유람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지금은 본보에서 날카로운 필력으로 맹활약 중인 김승일 논설위원이 기획했고, 취지에 공감한 언론재단이 동참한 대규모 조사시찰단이었다.

회사 디지털TF의 일원으로 참가했지만, 철저한 종이신문주의자였던 어제의 사고는 그 이후로 180도 바뀌었다. 익숙한 기자입력기를 버리고 통합CMS(콘텐츠관리시스템)를 도입하는 태세 전환을 한 것도 이 즈음이다. 당시 독일신문은 젊은층의 신문 외면, 배달 비용 상승, 광고 감소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독일은 신문사를 유지하는 구독료와 광고 수익의 감소로 인해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인터렉티브 보도, 심층보도 등 언론 기본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온라인 서비스 강화에 사활을 걸었다. 권역 도시의 디지털 독자가 얼마나 홈페이지에 접속하는지 분석하고, 해당 지역의 접속수가 떨어지면 즉각 관련 기사를 올려 대응하고 있었다.

궁금한 것을 물었다. “종이신문이 10년 안에 사라진다고 말씀하셨는데 PDF서비스는 대안이 되나요?” 답은 분명했다. “PDF는 답이 아닙니다. 종이신문과 함께 몰락할 것입니다.” PDF신문으로 디지털화를 꾀했던 내면의 의도가 박살 났다. 그런데 최근 다른 자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가지 않겠다는 PDF신문 구독의 길을 독일신문은 택했다. 2024년 기준 독일의 지역신문은 전국 1350만 부가 발행되는데 ‘이페이퍼 PDF신문’ 구독자도 260만 명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왜 홈페이지 기사를 유료 독자에게 나열식으로 보여주는 영미식 로그인월 방식만 택하지 않고 지면처럼 생긴 디지털 신문을 내세웠을까. 생각건대 이것은 어제의 향수에 기댄 전략이다.

PDF신문으로는 밥상을 덮거나 라면 냄비 깔개를 할 수는 없지만, 종이신문에 있는 독특한 내음과 맛이 있다. 넘길 때의 쾌감, 한눈에 들어오는 지면, 크고 작은 제목의 편집 의도 등이다. 〈부산일보〉가 부울경 독자의 사랑을 받는 지역신문에서 더 나아가, 전국의 독자들이 구독할 수 있는 신문이 되는 지름길이 PDF신문이다. 이 신문은 종이신문과 완전히 다르다. 채식주의자가 먹는 콩고기가 고기가 아니듯이, PDF신문은 신개념 디지털 신문이다. 콘텐츠 그룹 〈부산일보〉는 한층 고도화된 〈이페이퍼 PDF신문〉을 이달 말 전세계 독자에게 선보인다. 기대하시라.

이재희 디지털국 국장 jaehee@busan.com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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