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떠나지 않고도 대기업 커리어 쌓는 젊은 그들 [지방 소멸 대안, 원격근무]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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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삶·일자리 다 잡은 인재들

일자리 미스매치 대안 급부상
수도권 높은 물가 부담 없어
신입들 경력 쌓기에도 긍정적
대면근무 못지않은 장점 많아

부산에 거주하며 원격근무를 경험한 청년들은 “수도권의 높은 물가 부담 없이도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왼쪽부터 원격근무로 경력을 쌓은후 부산 취직을 준비 중인 이한홍 씨, 원격근무로 일하는 프리랜서 김동인 씨, 학업과 원격근무 병행하고 있는 이동훈 씨. 정종회·김종진 기자 jjh@ 부산에 거주하며 원격근무를 경험한 청년들은 “수도권의 높은 물가 부담 없이도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왼쪽부터 원격근무로 경력을 쌓은후 부산 취직을 준비 중인 이한홍 씨, 원격근무로 일하는 프리랜서 김동인 씨, 학업과 원격근무 병행하고 있는 이동훈 씨. 정종회·김종진 기자 jjh@

부산 ICT(정보통신산업) 인재가 모두 서울 등 수도권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 커리어보다 ‘삶의 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재들은 부산에 남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부산은 관련 전공 인재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청년 삶의 만족도도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가 걸림돌이다. 부산 기업 상당수는 경력자를 선호하고 신입 채용 시에는 구직자들이 만족할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지 않는다.

원하는 수준의 대기업에 몸 담고 부산에서 원격으로 근무할 수 있다는 얘기는 달라진다. 실제 부산에도 원격근무로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청년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고향 부산을 떠나지 않고도 대기업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부산, 신입은 갈 곳이 없다

대구 출신인 이동훈(25) 씨는 부산의 한 대학 컴퓨터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는 부산으로 진학한 이후 부산 매력에 흠뻑 빠져 일자리도 부산에서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채용 공고 사이트에서 일자리를 찾다 부산에서의 구직을 포기했다. 각 사이트에서 개발자 직무를 부지런히 검색했으나 이 씨의 조건에 맞는 일자리는 단 3개뿐이었다.

부산에는 기술·ICT 인재들이 근무할 수 있는 기업 자체가 적었다. 그나마 기업 대부분은 경력직을 선호했다. 그는 “‘수도권’으로 검색하면 대학생 신분이어도 이력서를 낼 수 있는 곳이 많았다”며 “신입으로 일을 해야 경력이 생기고 이를 기반으로 다른 곳에 또 취직하는 게 일반적인데, 부산은 그런 기회조차 없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부산에는 대학생 신분으로 실무를 쌓을 수 있는 현장 실습 기회도 적었다. 관련 전공으로 부산 한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김동인(23) 씨도 “제 전공으로 일할 수 있는 기업 자체가 없어서 학교와 연계된 현장실습 기회도 많지 않다. 특히 스타트업이 정말 적다”며 “수도권에 비슷한 계열의 학과를 다니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IT 대기업에서 채용과 연계해서 여는 부트캠프(실무 교육프로그램)도 많이 열리는데, 부산은 정말 적다”며 “입학할 때와 졸업할 때 상황을 비교하면 부산과 수도권의 격차는 엄청난 것 같다”고 전했다.

ICT 분야를 전공한 취업준비생 이한홍(28) 씨도 “부산에 가고 싶은 기업이 있다면 부산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절반 정도는 된다”며 “하지만 기업이 없어서 결국 남는 친구는 10%내외에 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네카라쿠배’, 부산서도 가능

이들은 부산에서는 더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고 느끼던 차에 원격근무 기회를 접했다. 원격근무는 수도권의 비싼 집값이나 물가를 감당하지 않고도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한홍 씨는 원격근무를 통해 외국인을 위한 장기 숙박 플랫폼 개발에 참여했다. 이한홍 씨는 “수도권 기업에서 임금을 더 높이 받아도 거주비 등을 고려하면 그렇게 높게 느껴지지 않는다”며 “신입들은 경력을 쌓기 어려운데 원격근무로 눈을 넓히니 경력을 쌓기 수월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원격근무로 경력을 쌓고 다른 기업에 면접을 본적이 있는데, 원격근무 경력을 상당히 긍적적으로 봤다”고 덧붙였다.

이동훈 씨도 대학생 신분으로 병원 내부 관리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수도권에는 원격근무가 활성화 돼 있어서 원격근무도 대면근무만큼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다”며 “주변에 원격근무로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플러스, 쿠팡, 배달의민족) 등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 일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김동인 씨는 원격근무로 3개월간 인턴근무를 한 후, 계속해서 원격근무 형태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스타트업들이 많이 생기려면 부산에서 신입을 위한 무대가 많아야 하는데, 기업 자체가 적다 보니 청년들이 계속 빠져나가는 것”이라며 “원격근무는 그런 청년들을 부산에 살 수 있게 하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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