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에서 찾아낸 이미지를 만나다
부산문화재단 기획 전시
‘책방지기의 미술관’
11월 15일까지 F1963
테마 책방·작가의 협업
부산 수영구 F1963에서 열리는 책방지기의 미술관 전시장 모습. 김효정 기자
한때 TV에 밀려 라디오는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을 묘사한 ‘비디오가 라디오스타를 죽인다’라는 유명한 노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라디오는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청취자의 사랑을 받고 건재하다. 비슷한 사례로, TV를 비롯해 유튜브, 영화 등 영상 매체가 득세하며 종이책은 사람들에게 외면당할 것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책을 직접 보고 구매하는 오프라인 서점 역시 온라인에 밀려 사라질 산업으로 꼽혔다. 다행히 아직은 책도, 서점도 여전히 현대인의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
뛰어난 그래픽 기술로 뭐든 영상으로 구현한다지만, 글을 통해 각자가 상상하는 세계는 훨씬 더 놀랍고 크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겸하는 대형 서점만 남을 것 같았지만, 동네마다 특성을 가진 작은 서점, 독립 서점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부산문화재단이 F1963 석천홀에서 진행하는 기획전시 ‘책방지기의 미술관’은 이 같은 매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다.
F1963에서 열리는 책방지기의 미술관 전시장 모습. 김효정 기자
부산의 독립 책방 6곳과 젊은 시각 예술인 9명이 협업해 언어가 만들어낸 신비한 세계와 그림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한자리에 펼쳤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부산문화재단 양고은 씨는 “책은 예술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원천이며, 그림은 삶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울림을 전한다. 이번 전시에선 책방지기의 책 한 권, 작가가 만들어낸 한 장면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만나 사유의 시간을 선물한다”라고 소개했다.
책방 전시라고 말했지만, 단순히 추천 책이나 책방의 특징을 소개하는 현장이 아니다. 각 책방은 ‘여행’ ‘살고 싶은 집’ ‘일상의 소중함’ ‘나다움’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부르는 책노래’ 등 고유의 주제를 정한 후 그것에 맞게 공간을 구성하고 주제를 느낄 수 있는 책들을 고른 후 배치했다. 현장을 어떻게 꾸미고, 어떤 책들을 배치했는지는 책방지기의 예술이자 작품이다. 책방지기의 작품에 시각 예술 작가들이 그림과 조각으로 좀 더 선명하게 주제를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전시장은 김재경 작가의 ‘산책’이라는 설치 작품으로 시작한다. 김효정 기자
기존 미술 전시보다 가볍고 유쾌하게 작품을 즐길 수 있고, 책 전시가 아니라 책방지기가 전하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관람객에게 스며든다. 재미있게 전시를 즐기면서 각 책방이 전하는 메시지에 뭉클한 감동이 느껴지는 색다른 행사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김재경 작가의 ‘산책’이라는 설치 작품이 반겨준다. 일상 속 여유와 즐거움, 자연과의 만남을 감성적으로 표현했다. 산책은 가볍게 걷는 행위지만, 내면과 마주하는 사색의 시간이기도 해 이 전시의 메시지와 맞닿아있다.
국내 1호 자연과학책방이라는 동주 책방 큐레이션 모습. 김효정 기자
영화관이 있는 책방 무사이는 토끼 조각과 무사이가 정한 그해의 책들로 꾸몄다. 김효정 기자
첫 서점은 두두디북스로, 서점에 들어서면 현실을 벗어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해보자는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다. 파도타기 클럽, 작가가 사랑한 술 등 독서와 활동을 엮어 책읽기를 확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여행을 주제로 꾸몄고, 여행을 떠난 펭귄이 마주하는 불꽃과 아름다운 경관을 표현한 류경하 작가의 작품이 책과 함께 빛나고 있다.
비건, 젠더, 로컬, 생태, 사회 등 다양한 시선과 목소리를 담은 책을 선보이는 나락서점은 ‘살고 싶은 집’이라는 주제를 선택했다. 작고 평범한 무언가를 통해 마음을 본다는 메시지를 담은 최고은 작가의 그림이 잘 어울린다.
영화관이 있는 책방, 무사이는 평소 영화 상영과 북토크, 비건 베이커리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일상의 소중함’을 주제로 영화의 한 장면과 책, 위수빈 작가의 토끼 조각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책 속의 장면을 현실로 가져온 듯한 윤민섭 작가의 입체 작품들. 김효정 기자
책과 사람, 이야기가 만나 새로운 연결과 위로를 만든다는 크레타 서점은 ‘나다움’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보이지 않는 감정과 리듬을 표현한 서영 작가의 입체 작품도 함께 만날 수 있다.
국내 1호 자연과학책방이자 연구소를 겸하고 있는 동주책방은 생물학자인 이동주 박사가 운영하고 있다. 대영박물관에서 연구원 생활도 했지만, 지역의 작은 서점에서 만들어가는 생활 속 과학 이야기에 의미를 찾고 있다. 공룡과 잠자리를 유난히 좋아한다는 책방지기는 이번 전시에서 공룡 조각가 황승연 작가와 제대로 만난 것 같다.
이정윤 작가의 액체고양이는 책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김효정 기자
부산 지역 아동전문서점으로, 이미 전국구로 유명한 책과 아이들도 참가했다.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100권의 책과 서점이 소유한 귀한 원화들을 보여준다.
책방과 작가의 협업 전시 외에도 뒤쪽 공간은 책 속의 장면을 현실로 고스란히 가져온 듯한 작가들의 작품이 기다린다. 윤민섭 작가의 발레리나들, 우징 작가의 작은 책들, 이정윤 작가의 액체 고양이 그림과 입체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 미소가 지어진다. 뒤쪽 공간은 독서나무 아래 읽기 공간을 설치했고 오디오북 존, 필사 존 등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활동도 준비돼 있다. 전시는 11월 15일까지 열리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관람객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책나무존. 김효정 기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