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 인적분할 선언…향후 전망은
새 정부 보험업법·상법 개정 앞서
CDMO-바이오시밀러 사업 분리
지난 9일 이례적 현장 방문 눈길
삼성 지배구조 개편 이슈가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적분할을 선언하면서다. 회사는 사업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한편으론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특히 최근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과 상법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본격적으로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수를 두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바’ 왜 인적분할 나서나
지난달 22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과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각각 분리하겠다고 공시했다. 이번 조치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순수 CDMO 기업으로 남고, 새로 신설되는 ‘삼성에피스홀딩스’는 바이오시밀러 전문 지주회사 역할을 맡는다. 향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각 사업의 독립성과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삼성그룹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이 설명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그동안 삼성 계열사의 분할이나 합병 과정에서는 언제나 ‘지배구조’라는 퍼즐 조각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적분할을 공시한 시점조차 미묘하다. 새로 들어선 이재명 정부는 보험업법·상법 개정 등을 통해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 소액주주 권익 강화 등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더구나 이 회장은 현재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삼성, 인적분할이 필요한 이유
업계에서는 삼성의 이번 인적분할 배경에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선 보험업법 개정에 전략적으로 대응이 가능해진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을 총자산의 3% 이상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중 약 20조 원 규모를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이 경우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인적분할이 이뤄지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에피스홀딩스 지분 매각이 가능해진다. 현재 기준으로 약 30조 원이 생기는 셈이다. 이 자금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되사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진다.
변수로 작용 중인 상법 개정도 대응이 쉬워진다. 상법 개정으로 인해 삼성생명 일반주주가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요구하게 되면, 경영진은 주주 이익을 위해 매각을 검토해야 한다. 이 역시 지배구조에 큰 균열을 만들 수 있다.
이에 삼성은 이번 인적분할을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아래에 ‘삼성에피스홀딩스’라는 중간 지주회사를 세워 삼성물산이 간접적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통제할 수 있게 설계했다. 또 삼성에피스홀딩스는 향후 자금 조달이나 상장을 통해 이 회장의 지배력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재용 회장의 이례적 현장 방문
이러한 민감한 시점에 이재용 회장은 지난 9일 삼성바이오로직스 5공장과 삼성바이오에피스 본사를 찾았다. 새 정부 출범 직후 이뤄진 이례적 행보에 대해, 업계는 바이오 사업 전략을 점검하는 동시에, 인적분할에 대한 상징적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5공장 공정을 둘러본 그는 주요 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바이오 사업현황과 미래 전략 등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평소 사업장을 방문할 때 직원들과 격의 없이 셀카를 찍는 등의 소통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스타일이지만, 이날 방문만큼은 임직원들과의 소통보다 실무자와 임원들의 비공개 보고가 중심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시기적으로 엄중한 경영환경과 중대한 의사결정 등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박상인 기자 si202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