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요리] 전쟁터 된 오사카엑스포
미중 관세 갈등 이어 엑스포서 ‘우주전쟁’
미국 ‘월석’ 전시 우주 개발 패권국 과시
중국, 인류 첫 달 뒷면 토양으로 도전장
일본 ‘화성의 돌’ 트럼프 동맹 강화 노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 관세전쟁으로 지구촌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관세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미국이 관세전쟁을 시작한 배경에는 세계 1위 자리를 위협하는 중국을 길들이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기세 싸움은 사실상 일상적인 일이다. 관세와 환율 등 긴박한 현안 갈등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의 국력을 과시한다. 경쟁국을 주눅 들게 하려는 도발, 우리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대국의 역도발이 반복되는 것이 국제사회의 이면인 것이다. 지난달 13일 개막한 2025 오사카·간사이 만국박람회(오사카엑스포)에서도 미국과 중국은 물론 개최국인 일본까지 합세한 ‘소리 없는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 엑스포에서 이들 국가는 우주 개발 패권을 둘러싼 기술력을 보여주는 전시물을 동원해 서로의 저력을 겨루고 있다. 이른바 ‘엑스포 우주전쟁’인 셈이다.
■ 미국, 아폴로 17호 월석으로 패권 과시
미국은 오사카엑스포 미국관에 달에서 가져온 돌인 ‘월석’을 공개 중이다. 미국은 1961년부터 1972년까지 NASA의 주도로 유인 달 탐사 계획인 아폴로 계획을 추진했다. 미국은 모두 6차례에 걸쳐 달에 발을 디디면서 당시 소련에 뒤처졌던 우주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장악했다. 또 달 탐사를 통해 각종 달 표면 암석 등을 채취해 지구로 귀환하는 성과를 거뒀다. 오사카엑스포에 전시된 ‘월석’은 1972년 미국의 유인 달 탐사선인 아폴로 17호가 달에서 가져온 것이다. 미국은 1970년 오사카엑스포에서도 아폴로 12호가 채취한 월석을 공개, 당시 일본의 엑스포 흥행을 견인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식에서 “화성에 성조기를 꽂겠다”라고 밝혔다. 달에 이어 화성 유인 탐사도 자신의 임기 동안 성공시키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아폴로 17호는 인류가 달에 보낸 마지막 유인 우주선이다. 이번에 아폴로 17호의 월석을 공개한 것을 두고 이제 달이 아닌 화성 진출을 통해 미국의 우위를 계속 입증하겠다는 의중을 담았다는 해석도 이어진다. 아울러 미국관은 2022년부터 미국 주도로 추진 중인 다국적 달 개척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계획’을 위해 개발된 우주발사시스템 로켓 모형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이 역시도 우주 개발과 관련한 미국의 다국적 동맹의 끈끈함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 중국, 인류 첫 달 뒷면 토양으로 미국 도발?
미국은 달의 앞면을 세계 최초로 유인 탐사하는 데 성공했지만 달 뒷면 탐사는 중국이 한발 더 빨랐다. 중국이 지난해 5월 발사한 무인 달 탐사선 창어 6호는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서 토양 표본 1935kg을 채취해 지구로 귀환했다. 달 뒷면 토양은 달의 초기 충돌 역사, 달 뒷면의 화산 활동 등 달의 생성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오사카엑스포에 창어 6호가 가져온 토양 표본을 전시한 것은 미국도 못한 일을 자신들이 해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우주 개발 분야 패권을 쥔 미국에 대한 간접적인 도전장으로도 풀이된다.
중국은 2003년 달 탐사 프로그램인 창어 계획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창어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을 뜻한다. 창어 계획을 총괄하는 중국 국가항천국(CNSA)은 2007년 10월 창어 1호를 발사한 데 이어 2010년 10월 창어 2호, 2013년 12월 창어 3호를 발사해 달의 3D 지도를 제작하고 통신 실험을 하는 등 달 뒷면 탐사를 위한 준비를 이어갔다. 마침내 2018년 12월 발사한 창어 4호는 달 뒷면의 폰 카르만 크레이터에 세계 최초로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2020년 11월 창어 5호는 달 앞쪽 표면에서 토양·암석 샘플을 수집한 뒤 달에서 이륙, 궤도선과 도킹하는 방식으로 지구 귀환에 성공했다.
중국은 누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재 창어 6호 프로젝트까지 진행한 상태다. 창어 6호가 최초로 달 뒷면에서 채취한 토양 표본은 중국의 우주 기술력이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인 셈이다. 특히 미국은 정권 교체 때마다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기존 우주 개발 계획이 번복되는 상황이 반복됐지만 중국은 정권 영속성을 기반으로 장기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 비약적인 기술 발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이 오사카엑스포에 자신들이 인류 최초로 달에서 가져온 토양을 전시하는 것이 축적된 기술력에 바탕으로 둔 미국에 대한 도발로도 해석되는 것은 이런 이유인 것이다.
■ 일본 ‘화성의 돌’로 미국과의 동맹 과시?
일본은 1955년 3월 최초의 시험 로켓을 발사한 이후 현재까지 다양한 우주 개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은 달 탐사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유인 우주실험시설 운용과 소행성 탐사에 성공하면서 우주 강국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일본우주탐사국(JAXA)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운용 중인 유인 우주실험시설인 키보(kibo)는 2008년 3월 NASA의 우주왕복선 엔데버호에 탑재돼 첫 발사됐다. 키보는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ISS에서 인간의 우주공간 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실험을 수행한다.
JAXA는 1990년대 후반 소행성 탐사 프로젝트를 본격화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3년 5월 소행성 탐사선인 하야부사를 발사했다. 하야부사는 세계 최초로 소행성 이토카와에 착륙, 샘플을 채취한 뒤 2010년 6월 지구로 돌아왔다. 이온 추진 시스템, 자율 항법 시스템, 소행성 탐사 기술 등에 기반한 하야부사의 귀환으로 일본은 자신들의 우주 탐사 역량을 세계에 입증한 셈이다. 일본은 2010년 5월 세계 최초로 돛의 원리를 이용해 금성까지 항해하는 우주 범선인 ‘이카로스’ 발사에도 성공했다. 초박막 필름으로 제작한 가로·세로 14m짜리 돛을 단 이카로스는 태양에서 쏟아지는 입자 반발력을 바람으로 삼아 움직인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과 함께 만만치 않은 우주 기술력을 자랑하는 일본은 이번 오사카 엑스포에 ‘화성의 돌’을 전시 중이다. 일반에 공개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돌은 2000년 일본극지연구소가 남국 탐험 과정에서 채취한 것이다. 남극의 야마토 빙하에서 발견돼 ‘야마토 운석’으로 불리기도 한다. 길이 29cm, 높이 17.5cm에 무게는 23.7kg으로 측정됐다. 럭비공 크기에 불과하지만 지구에서 발견된 화성 운석 중 두 번째로 큰 것으로 알려졌다. 2000만 년 전 화성과 우주 천체의 충돌로 우주로 방출된 이 운석은 5만 년 전에 지구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일본이 다른 우주 개발 성과물을 놔두고 굳이 ‘화성의 돌’을 전시한 것은 화성에 눈독을 들이는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당초 오는 7월로 예상된 트럼프 대통령의 오사카박람회 방문이 성사돼 미국과 일본 정상이 ‘화성의 돌’을 함께 관람할 경우 미국과 일본이 우주 개발 분야에서도 동맹을 과시하며 중국을 공동 견제한다는 ‘상징적 퍼포먼스’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관측이다. 오사카엑스포가 현재 진행 중인 관세전쟁에 이어 우주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감정싸움을 본격화하는 기폭제가 될 것인지를 두고 지구촌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