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자취 살림살이 90%가 중고"… 고물가에 중고 대세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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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옷 대신 빈티지 의류 선호
"원가보다 4만~5만 원 저렴해"
졸업식 중고 꽃다발 거래 늘어
관련 플랫폼 가입자도 급증세
현명한 소비 사회적 인식 변화

중고 플랫폼 ‘당근마켓’에 ‘꽃다발’을 검색하자 중고 꽃다발을 판다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왼쪽). 26일 부산도시철도 서면역 지하상가에 있는 한 빈티지 의류 판매점에서 무게 100g당 2500원에 중고 의류가 팔리고 있다. 당근마켓 화면 캡처 중고 플랫폼 ‘당근마켓’에 ‘꽃다발’을 검색하자 중고 꽃다발을 판다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왼쪽). 26일 부산도시철도 서면역 지하상가에 있는 한 빈티지 의류 판매점에서 무게 100g당 2500원에 중고 의류가 팔리고 있다. 당근마켓 화면 캡처

“비싼 겨울 외투를 싸게 살 수 있어서 자주 찾아요. 특히 패딩은 20만~30만 원 싸게 살 수 있어요.”

지난 26일 부산도시철도 서면역 지하상가에 있는 한 빈티지 의류 판매점. 이곳은 옷 무게 100g당 2500원을 받는 가게로, 상태가 양호한 빈티지 의류들이 진열돼 있었다. 매장을 찾는 이들은 10대부터 70대까지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지속되는 고물가에 줄어든 소비가 중고 제품으로 향하고 있다. 옷이나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졸업식 꽃다발까지 남이 사용했던 것을 재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고물가에 지갑을 닫은 시민들은 새 옷 장만부터 멈췄다.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소비에서 의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90만 7000원이었다. 이 가운데 의류·신발 지출은 11만 4000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6% 감소했다. 전체 소비지출에서 의류·신발이 차지하는 비중은 3.9%로,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신제품과 최신 유행에 민감한 10대조차도 중고 의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옷걸이에 걸린 중고 패딩 점퍼를 들춰보던 권지원(18) 씨는 “빈티지 옷을 사면 원가보다 4만~5만 원 정도 싸게 살 수 있는데 특히 원가가 비싼 겨울 외투는 훨씬 더 싸진다”며 “최근 옷값이 올라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로는 원하는 옷을 살 수 없다 보니 주변 다른 친구들도 저렴한 빈티지에 관심을 갖고 많이들 구매한다”고 말했다.

졸업식 시즌이 다가오면서 중고 꽃다발 거래도 늘고 있다. 중고 플랫폼 ‘당근마켓’에 ‘꽃다발’을 검색하자 ‘사진만 찍고 판매한다’ ‘일부 시들긴 했지만 예쁘다’ 등의 글과 함께 중고 꽃다발을 판다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가격은 1만 원 내외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꽃다발보다 2만~3만 원 저렴하게 꽃다발을 구매할 수 있었다.

살림살이 장만과 식사까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해결한다. 혼자 자취를 시작한 주영은(25) 씨는 “정수기, 공기청정기, 스탠드. 탁상, 바지 행어, 에어프라이어, 스팀다리미까지 살림의 90%가 중고지만 아무도 모르고 사용하는 데 지장도 없다”며 “포장을 제거해 한두 번 사용했거나 가전제품 유행이 지났을 뿐 성능이나 외관은 큰 차이가 없는데 가격은 4분의 1로 떨어지니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김 모(28) 씨는 “확실히 물가가 오르다 보니 편의점에서 한 끼 해결하려고 해도 5000원이 든다”며 “예전 같으면 그냥 샀겠지만, 요즘은 중고 거래 플랫폼에 들어가 싸게 내놓은 편의점 기프티콘을 구매해 몇 푼이라도 아끼고자 한다”고 털어놨다.

실제 중고 제품을 사고파는 플랫폼의 사용자 수도 폭증했다. ‘당근마켓’ 애플리케이션 누적 가입자 수는 지난해 10월 40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당근마켓에서 중고거래로 맺어진 건수는 1억 8300만 건이다. 최근에는 중고폰 시세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스마트폰 시세 조회’ 서비스를 오픈하기도 했다. 상태는 좋지만 연식이 오래된 휴대폰을 저렴하게 구매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했다.

김현석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고 시장이 상당히 활성화된 해외에 비해 그간 우리나라는 중고 제품이 크게 각광받지 못했는데 요즈음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며 “나에겐 불필요한 물건을 그냥 버리지 않고 새 주인을 찾아주는 과정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적정한 금액이 형성되는 것은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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