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초등생 ‘타짜’까지… 청소년 도박범 1년 새 30배 급증
지난 1년 사이버 도박 검거자 중
19세 미만이 전국 4715명 차지
전 연령대의 47.2%로 증가 추세
부산도 269명… 해마다 더 어려져
온라인으로 도박에 빠져드는 청소년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연간 도박으로 경찰에 붙잡힌 청소년이 1년 남짓 만에 162명에서 4715명으로 30배 가까이 급증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도박 사이트에 곧바로 접속할 수 있다 보니 청소년들에게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학생이 사이버 도박판을 개설하는 일도 벌어지는 등 도박에 빠져드는 청소년 연령대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온라인 도박 사이트 접근은 너무도 쉬웠다. 3일 〈부산일보〉 취재진이 유튜브에 ‘바카라’를 검색하자 별도의 성인 인증 없이 시청할 수 있는 실시간 생방송 67개가 검색됐다. 각 생방송 영상 채팅창에는 도박·성인 사이트 광고가 무수히 게시된다.
이 중 실시간으로 750명이 시청 중인 라이브 방송 채팅창에 들어가보니 1분에 7개씩 도박·성인 사이트 광고가 올라오고 있었다. 광고 링크를 클릭하자 도박에서 돈을 딸 수 있는 방법을 1 대 1 맞춤으로 알려주겠다는 광고가 떴다. 509명이 시청 중인 다른 바카라 라이브 방송 채팅창도 링크로 도배돼 있다. 링크를 클릭하자 도박 사이트를 안내하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주소가 뜬다. 이 과정에서 어떤 성인 인증도, 경고 메시지도 없었다. 청소년들도 쉽게 사이버 도박에 접근할 수 있는 구조다.
도박으로 경찰에 붙잡히는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부산에 사는 고등학생 A 군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이용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A 군은 게임을 하듯 도박 사이트를 접했다고 한다. 처음엔 돈도 땄다. 몇 주치 용돈을 한 번에 딸 수 있어 점차 중독 증세를 보였다. A 군은 결국 2년에 걸쳐 8200만 원을 도박에 탕진했다.
도박을 하느라 생긴 빚에 허덕이는 청소년도 있다. 부산 거주 중학생 B 양은 사이버 도박에 빠져 해당 사이트가 링크를 올리며 알선한 불법 대출 사이트에서 돈을 빌리게 됐다. 높은 이자율에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A 양은 어머니에게 손을 벌려 원금과 이자를 합한 500만 원을 갚았다. 중독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B 양에겐 다시 200만 원의 빚이 생겼고 그 돈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A 군과 B 양 외에도 269명의 청소년이 1년 남짓 기간에 도박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실제 전국적으로 도박으로 경찰에 붙잡힌 청소년이 빠르게 늘고 있다. 경찰이 2023년 9월 25일부터 올해 10월 31일까지 1년 1개월여간 사이버 도박 특별 단속을 벌인 결과, 청소년 4715명이 검거됐다.
이 기간 전체 연령대에서는 9971명이 검거됐는데, 청소년이 절반 가까운 47.2%나 됐다. 162명의 청소년이 검거됐던 직전 단속기간(2022년 9월~2023년 9월)에는 162명의 청소년이 검거됐다. 1년 새 무려 2784%, 즉 30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가장 어린 청소년이 9세까지 내려가는 등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다. 검거 청소년들을 연령대로 보면 17세(1763명·38%)가 가장 많았고, 16세(1241명·26%), 18세(899명·19%), 15세(560명·12%), 14세(206명·4%)가 뒤를 이었다. 13세(37명·0.8%), 12세(8명·0.2%), 9세(1명) 등 어린 나이의 청소년들도 있었다.
부산에서 검거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선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푸른나무재단 부산지부 관계자는 “사이버 도박으로 검거돼 선도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청소년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며 “2022년에는 고등학생들이 주를 이뤘는데 지난해부터는 중학생으로 연령대가 어려지더니 올해는 유독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부산에선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직접 만들어 1500여 명을 상대로 억대 도박판을 벌인 간 큰 중학생 등 10대 100여 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룰렛, 바카라 등 성인 도박을 그대로 흉내 낸 불법 도박 사이트를 직접 만들고 운영한 ‘총책’이 중학생이었다. 이용자들도 대부분 10대 청소년이었다.
동의대 최종술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불법 도박 사이트를 폐쇄하려면 방송통신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 기간 사이트는 버젓이 영업을 한다”며 “현실적으로 불법 도박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경찰이 나서 도박 사이트 개설이 엄중한 범죄임을 청소년들에게 알리고, 범죄 집단을 집중 수사해 발본색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