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곰곰 생각] 정년 제도의 사용 연한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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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특정 나이 되면 일괄·강제 퇴직
AI 대세·100세 시대에 안 맞아

영미권 ‘연령 차별’로 보고 폐지
일본, 자율 유도 촉탁 계약 정착

고령자 ‘계속고용’ 공론화 시작
정년의 유용성, 먼저 따져 봐야

지난 4월 22대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300명의 평균 연령은 56.3세였다. 신중년(55~64세) 세대가 주축인 셈이다. 국회의 평균 연령은 임기 중인 3년 뒤에 일반 직장인의 법정 정년인 60세에 도달한다. 자정이 지나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처럼, 예순이 되는 그날부터 갑자기 생산성이 뚝 떨어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국회의원이 60세에 접어들었다고 갑자기 활력을 잃지 않는 것처럼, 직장인들의 숙련도와 체력도 갑자기 떨어지지 않는다.

특정 나이에 이르렀다고 일자리를 떠나게 하는 제도는 합리적이지 않다. AI(인공지능)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고, 수명이 늘어 100세 인생을 구가하는 시대라 더더욱 그렇다. 미국, 영국, 뉴질랜드가 정년 제도를 연령 차별로 규정하고 폐지한 이유다. 정년 제도의 사용 연한이 다했다는 인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고령자 ‘계속고용’ 문제는 모든 선진국의 공통 현안이다. 일본에서는 ①정년 연장 ②정년 폐지 ③퇴직 후 재고용의 선택지를 줬다. 60세 정년 제도 자체는 유지한 채 자율에 맡긴 결과, ‘퇴직 후 재고용’으로 쏠렸다. 21인 이상 기업의 69.2%가 이른바 촉탁직 고용제를 도입했고, 아예 정년을 연장한 곳은 26.9%, 정년을 폐지한 기업은 3.9%로 나타났다.

한국과 같은 연공서열 임금 체계라서 고임금자를 정규직으로 유지하는 대신 비정규직으로 ‘계속고용’해서 일손 부족의 급한 불은 끄되 인건비 부담은 줄이려는 추세가 읽힌다. 반대로 영미권의 정년 폐지는 노동 유연성과 성과에 따른 연봉제가 뒷받침된 결과로 해석된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최근 고령자 ‘계속고용’에 대한 합의안을 내년 초까지 도출한다고 밝혔다. 경사노위 산하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에서 60세 이후에 계속 일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정년 연장 혹은 폐지, 퇴직 후 재고용 등 3가지를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년 연장론은 법정 정년보다 훨씬 빠른 실제 퇴직 시점과 65세 연금 개시 사이에 5년 이상의 단절이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또 국민연금의 올해 월평균 급여가 59만 5520원에 불과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연금만으로는 생계난에 직면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가 없다. 실제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1970년대까지 연간 100만 명씩 태어나다가 최근년 4분의 1 이하로 떨어져 미래 세대의 노동 시장 유입이 급감하는 사정과도 겹친다. 2차 베이비붐 세대가 현장에 더 머물러야 부족한 일손이 보충되는 한편 노인 빈곤도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실제 행정안전부와 대구시가 시설관리, 경비, 미화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직 근로자 정년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연장하기로 했다. 민간 부문에서는 현대자동차 노사가 기술직 사원의 촉탁 고용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기로 올해 단체협약을 갱신했다.

하지만 정년 연장이 만능이 아니라는 논쟁적인 지적도 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간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에서 인구 변화가 가져올 노동시장 불균형을 분석한 뒤 정년 연장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회복지서비스업, 운송업 등 수요가 급증할 업종과 부문은 정년의 의미가 없어진 반면, 청년 세대의 일자리가 기성세대와 달라 대체 효과가 없다는 의미에서다. 또 미래 청년 인구가 급감해도 대기업은 구인난을 겪지 않을뿐더러, 정년 연장으로 고령자까지 계속 고용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구인난에 시달리는 지방의 중소기업은 정년 연장의 혜택을 누리기 어려울 수 있다.

고령자 ‘계속노동’은 인구 추계와 일자리의 구조 변동, 노동 생산성 변화를 함께 분석할 때 해법이 도출될 테다. 또 ‘60세 이후’는 직장 내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에 발목이 잡혀 있고, 사회적으로는 국민연금과 맞물려 있다. 업종, 부문별로 상황이 다른 점도 문제를 어렵게 한다. 과거처럼 일률적인 법 적용이 어려울 수 있다. 은퇴자를 내보내고 청년 신입사원을 뽑아야만 하는 사업장이 있는가 하면, 촉탁 재고용이 절실해진 업종이 있을 수 있다. 사회적 공론을 거치면서 업종과 부문별로 자율적인 시행착오가 불가피해 보인다.

1988년 국민연금 출범 때는 60세가 되면 연금 수급이 시작됐다. 당시 정년은 58세였다. 36년이 지난 지금도 정년 제도는 큰 틀에서는 동일하다. 고령자 ‘계속노동’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 꼭 필요한 질문이 있다. 정년 제도는 여전히 유용한가. 즉,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제도인가를 밝혀야 한다. 어쩌면 해결책은 ‘정년’ 바깥에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정년 제도의 쓸모를 밝히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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