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린 ‘긴축의 시대’…한은, 기준금리 0.25%P 인하
내수 살리기 나선 한은
가계·소상공인 이자 부담 낮아질 듯
한국은행이 3년 2개월 간 지속된 '긴축의 시대'에 종말을 선언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돈줄을 죄던 '긴축'에서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 '완화'로 돌아섰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11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3.50%인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P) 낮췄다.
이는 3년 2개월 만의 피벗(통화정책 전환)이고 금리 인하 이력 자체로만 보면 2020년 5월 이후 4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금리가 낮아지면 불안한 수도권 집값과 가계대출이 다시 들썩일 우려가 있지만 한은이 인하를 단행한 것은 무엇보다 우리나라 경기·성장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경기 침체가 시작되기 전에 높은 금리와 물가에 억눌린 민간 소비·투자 등 내수에 숨통을 틔워주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걸림돌로 여겨져온 미국과의 금리차가 역채 최대폭(2.0%P)에서 1.5%P로 축소되며 금리 인하에 따른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이나 외국인 자금 유출 걱정도 크게 줄어든 점도 영향을 끼쳤다. 이날 금통위의 인하 결정으로 두 나라 금리 격차(한국 3.25%·미국 4.75∼5.00%)는 다시 1.75%P로 벌어졌다.
지난 2분기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보다 0.2% 뒷걸음쳤다. 분기 기준 역(-)성장은 2022년 4분기(-0.5%) 이후 1년 6개월 만이다. 특히 민간 소비가 0.2% 감소했고,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도 각 1.2%, 1.7% 축소됐다.
통화긴축의 제1 목표인 '2%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달성된 만큼 한은 입장에서는 금리 인하에 따른 인플레이션 부담도 크지 않다.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4.65(2020년=100)로 작년 같은 달보다 1.6% 올라 2021년 3월(1.9%) 이후 3년 6개월 만의 1%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피벗의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가계대출 기반의 수도권 집값 급등세가 9월 이후 어느 정도 진정된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9월 말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30조 9671억 원으로, 8월 말(725조 3642억 원)보다 5조 6029억 원 증가했다. 월간 최대 기록이었던 8월(+9조 6259억 원)보다 증가 폭이 약 4조 원 정도 줄었다.
다만 9월 가계대출, 주택 거래, 집값 추이에는 주말까지 닷새에 이른 '추석 연휴 효과'도 반영된 만큼 가계부채나 부동산 시장이 추세적으로 안정됐다고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많다.
미래에셋증권 민지희 채권 애널리스트는 "9월 가계대출 증가세가 7∼8월보다 꺾인 것은 맞지만, 추석 연휴까지 끼어 있는 한 달 추이만을 보고 추세가 전환됐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은에 따르면 대출 금리가 기준금리 인하 폭만큼만 떨어질 경우 가계대출자의 이자 부담은 연간 3조 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대출자 1인당 연간 이자 부담은 평균 약 15만 3000원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소상공인(자영업자)을 포함한 기업의 이자 부담도 줄어든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이 한은을 통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0.25%P 내리면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1조 7000억 원가량 감소한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