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만에 열린 의료개혁 토론회, 자기 말만 하고 끝났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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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의대·대통령실 토론
장상윤 수석 “최소한 2000명”
강희경 교수 “의료비만 늘어나”
입장 차만 확인하고 토론 마무리
객석선 정부 주장에 반발하기도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융합관 박희택홀에서 열린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마친 뒤 각자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융합관 박희택홀에서 열린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마친 뒤 각자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8개월을 넘긴 가운데, 대통령실과 의료계의 첫 토론회가 극적으로 열렸지만 양측의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끝났다. 대통령실은 증원이 늘어나는 의료 수요를 고려해 과학적 근거 아래 추진됐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의대 교수 측은 “정부의 의대 증원으로 의료비 지출만 늘어날 것”이라고 반박했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에서는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가 마련한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정부 측에서는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과 정경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이, 의대 교수 측에서는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상대책위원장과 하은진 서울대 의대 교수가 토론 패널로 참석했다. 이번 토론회는 정부 측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과 김택우 전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이 지난 2월 23일 TV 토론을 실시한 이후 8개월 만에 열린 행사다. 오후 2시에 시작한 토론회는 예정된 2시간을 30분 넘겨 오후 4시 30분께 마무리됐다.

장 수석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미래에 늘어날 의료 수요를 고려한 최소한의 수치라는 정부와 대통령실의 기존 입장을 다시 밝혔다. 장 수석은 “의료계는 의료개혁의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의사 수는 늘릴 수 없다고 한다”며 “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어 의료 수요를 측정할 수 있고, 장래 인구 추계 등을 토대로 정밀하게 의사 수급을 측정할 수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장 수석은 “정부가 참고한 3개의 전문가 연구에서 2035년까지 의사가 1만 명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고, 연구 보고서 내 비현실적인 요소를 현실에 맞게 보완해 봤을 때는 1만 명이 아니라 배 이상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장 수석은 “사실상 2000명이 아니라 최소 4000명 이상의 증원이 필요한 상황이며, 정부가 줄곧 밝혀 온 2000명은 최소한의 숫자”라고 설명했다.

장 수석이 이 같은 발언을 하자 토론장 객석에서는 “거짓말이다” “시뮬레이션은 해봤느냐” 등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의료계는 의사 수가 많아지면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이 많아질 것이라며 정부의 의대 증원 필요성을 반박했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상대책위원장은 “2030년 의료비는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6%로, 현재 건강보험료의 1.6배를 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GDP 대비 의료 비용 증가를 문제 삼았다. 강 비대위원장은 “우리나라 의사 수가 굉장히 빨리 증가하고 있고,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과 의사 수가 비슷하다”며 “의사 수가 늘면 비용이 더 느는 것이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급증하는 의료 비용과 함께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지역의료 소멸이 한국의료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의사 수가 서울에서는 늘었지만, 충남이나 경북 등 지역에서는 늘지 않았다”며 “의사 증원보다는 필요한 곳에 의사가 가게 해주자고 제안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하은진 서울대 의대 교수는 “과도한 개혁 조치나 급진적인 변화는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며 “국민과 정부, 의료계가 한 팀이 돼 신뢰를 바탕으로 투명하게 논의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과 의대 교수의 토론이 끝난 뒤 토론장 객석에서는 사직 전공의와 시민,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자신을 사직 전공의로 소개한 한 참가자는 “지금도 의대를 졸업한 상당수 학생의 전공의가 되지 못한 상황”이라며 “의대 증원으로 늘어난 의대생들을 전공의로 키워낼 방안을 정부는 고려하고 있느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편 정부는 의료계가 정부와의 대화에 참여해 달라고 밝혔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의료계가 전제조건이나 사전적 의제를 정하지 말고 여야 의정 협의체,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참여해 주길 다시 한번 부탁한다”고 밝혔다. 박 차관은 이어 “오는 18일까지 진행되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 위원 추천에도 의료계가 위원을 추천해 주길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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