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아동시설 ‘덕성원’ 인권유린 인정… 국가 사과 필요”
진실화해위, 인권 침해 사건 규정
공식적 사과 요구·진실 규명 결정
원생 진술로 노역·폭행 등 드러나
경찰 묵인 지적… 전수조사 권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부산 아동보호시설인 덕성원에서 발생한 구타·성폭력 등 중대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해 피해 사실을 인정했다. 진실화해위는 인권 침해를 묵인하고 방조한 국가에 대해 공식적 사과와 전수 조사를 요구했다.
진실화해위는 제88차 위원회를 열고 ‘덕성원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10일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덕성원 피해자 일부는 부모가 있는데도 강제로 시설에 수용됐다. 또한 덕성원 내에서 구타 등 폭행과 성폭력, 강제 노역 등 각종 중대 인권 침해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진실화해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82년 1월 어머니와 함께 부산역에 있던 안 모 씨는 경찰의 불법 단속으로 어머니와 함께 형제복지원으로 강제 수용됐다. 같은 해 7월 안 씨는 덕성원으로 옮겨졌다. 안 씨 외 다른 피해자 3명도 부모가 있었으나 경찰의 과잉 단속, 고압적인 분위기로 덕성원에 강제 수용됐다.
피해자들은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고 진술했다. 평일에는 하교 후 저녁 식사 전까지, 일요일과 방학 기간에는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덕성원 내 농장과 공사 현장 등에서 일해야 했다. 이들은 깻잎 1000장 따기, 파리 100마리 잡기 등 작업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구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덕성원 원장 김 모 씨는 식사 준비, 설거지, 청소 등에 원생을 동원하거나 자신이 운영하는 피시방 등 개인 사업체에서 강제로 일하게 만드는 등 원생 노동력을 착취했다.
상습적인 폭력과 성폭력도 만연했다. 덕성원 관계자들은 구타, 가혹 행위를 행했는데, 특히 원장 아들 김 모 씨는 당시 초등학생, 중학생이었던 피해자들을 모아 서로 싸우게 하고 이를 지켜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남자 원생을 성추행하거나 여자 원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다른 덕성원 관계자 역시 피해자들을 자루에 넣어 지붕에 매단 후 몽둥이로 때리고, 성폭력 또한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중대 인권 침해 사건이 만연했지만 수사 당국은 이를 방임, 묵인했다. 1989년 덕성원을 퇴소한 피해자는 부산 해운대경찰서에 덕성원 원장을 상대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경찰은 폭행 발생을 확인하고도 원장의 “교육상 필요한 조치였다”는 말만 듣고 범죄 행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6차례 신고가 이뤄졌으나 경찰은 원장의 말만 듣고서 그냥 복귀했다는 게 피해자들 진술이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덕성원에 대한 전수 조사를 통해 피해 규모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적 사과와 피해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관계자는 “덕성원 피해자 명단이 있는 부산시에 전수 조사를 권고한 것”이라며 “형제복지원처럼 동등한 수준으로 조사와 피해 회복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덕성원은 6·25전쟁 기간인 1952년 부산 동래구 반송(현재 해운대구) 지역에 설립된 아동보호시설이다. 1996년 사회복지법인 덕성원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하다 2000년 폐원했다.
덕성원의 정확한 피해자 수와 신원을 명확히 파악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부산시가 가지고 있는 덕성원 수용자 대장엔 1956년부터 1967년까지 덕성원에 입소한 원생 174명이 기록돼 있다. 다만, 이후 덕성원에 입소한 이들에 대해선 공식적인 기록이 없다.
한편 덕성원피해생존자협의회 안종환 대표는 진화위에서 진실 규명 결정이 내려진 만큼 후속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법안 마련을 국회에 요청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실은 적극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 의원실은 지난 8월 국회입법조사처와 진화위에 ‘부산 덕성원 사건’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낸 바 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