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모바일 혁명과 문해력
모바일국장
세대 불문 한국인 문해력 낮아져
한국어 배우는 외국인은 급증세
스마트폰·플랫폼 기업 등장 이후
유튜브 시청 월 40시간 넘어
알고리즘으로 취향 장벽 굳어져
이용자 의지로 다른 세상 탐색을
중식 제공-짜장면 줘요?
족보-족발 보쌈 세트.
시발점-욕하세요?
우천 시 장소 변경-우천이 어디 있는 도시죠?
마치 개그 대본 같은 이 말들은 일부러 웃기려고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최근 전국 교사 58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 조사’ 결과에 나온 사례들입니다. 이 조사에서 교사들은 학생 90% 이상의 문해력이 낮아진 상태라고 답했습니다. ‘교육이 문제다’, ‘스마트폰 중독 때문이다’ 등 말들이 많지만, 학생만의 일이 아닙니다. 인크루트가 지난 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 909명을 대상으로 ‘현대인의 문해력이 어떻게 변했냐’고 질문한 결과 약 90%가 낮아졌다고 답했습니다.
세대를 가릴 것 없이 현대 한국인의 문해력이 저하되는 이 현상은 글로벌 한국어 열풍이라는 또 다른 현실과 겹쳐 보면 묘한 위기감이 듭니다. 온라인 언어 플랫폼 프레플리 조사 결과 세계적으로 한국어 강좌 수강생이 지난 1년간 4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언어 수강생의 연평균 성장률 9%보다 5배 이상 높습니다. 특히 유럽권 국가의 수강생이 68% 늘어 한국어에 대한 가장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한국의 노래와 영화, 드라마가 글로벌 인기를 끄는 덕분입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이 급증하는데, 정작 한국 내에서는 글 맥락과 단어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현상은 왜 빚어질까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단서를 찾아봅니다. 스마트폰과 함께 모바일 혁명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이 곧 돈이 되는 ‘주목 경제’ 시대가 시작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영상물 공유 등의 분야에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 플랫폼 기업은 최대한 많은 이용자를 최대한 오래 자신의 플랫폼 안에 머물게 함으로써 이윤을 챙깁니다. 앱 분석 서비스업체 모바일인덱스 집계에 따르면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는 한국에서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까지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1위였습니다. 유튜브의 이런 강세는 읽는 문화에서 보는 문화로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튜브는 검색 시장에서도 절대 강자 네이버를 바짝 뒤쫓고 있습니다.
특히 유튜브 중에서도 10~30초 길이의 짧은 동영상인 쇼츠가 시청 시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올 초 한 조사에서 한국인의 월간 유튜브 시청 시간은 5년 전인 2019년 21시간에서 배 가까이 늘어난 40시간으로 조사됐습니다. 2021년 7월 쇼츠 출시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유튜브는 기존 영상보다 짧은 쇼츠 시청 횟수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수익을 올리도록 수익 배분 구조를 짰고, 긴 영상보다 쇼츠를 여러 개 올리는 것이 시선을 끌기에도 좋고 수익에도 유리했습니다. 이런 숏폼 영상의 인기는 인스타그램이 국내 MAU 13위라는 실적에서도 확인됩니다. 자체 숏폼인 릴스를 통해 사용자를 크게 늘리며 그 많은 SNS 플랫폼 중 가장 많은 MAU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크리에이터가 더 다양한 숏폼 영상을 만들어 공유함으로써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순환 고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지난해부터는 더 쉽게 숏폼 콘텐츠를 만들도록 도와주는 인공지능(AI) 도구 등장으로 날개를 달았습니다. 대본, 사진, 영상 모두를 AI에 의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작뿐 아니라 유통 과정에도 AI가 이용자 취향을 분석해 좋아할 만한 영상을 추천하는 알고리즘이 작동합니다. 이 알고리즘의 장벽은 내 관심 바깥의 세상을 탐색할 기회를 차단합니다. 다른 계층·세대·성별 간 소통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이런 소통 단절은 문해력 저하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다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만 대화하는 것이 훨씬 편해집니다. 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엄청난 편리를 제공했지만, 그만큼 행복해진 것은 아니듯 ‘모바일 혁명’ 이후 우리 사회의 소통이 더 잘 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기술에는 언제나 이해(利害)가 공존합니다. 쓰기 나름입니다.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유튜브가 새로운 배움과 교류의 장이 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알고리즘 장벽에 갇히지 않고 때때로 내 관심 밖 다른 세상도 둘러보며 이해의 폭을 넓혀갈 필요가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야의 블로그나 서적을 찾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테지요. 읽기 귀찮은 긴 글을 찾아 읽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할 때 소통의 장벽도 허물어지지 않을까요. 마침, 책 읽기 좋은 가을 아닙니까.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