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교육 [3인3색 性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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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회 부산대 명예교수

조선시대 여자아이들은 성교육을 주로 어머니로부터 받았다. 내용은 아들을 낳는 방법에 집중되었다. 가문의 대를 잇지 못하면 시앗을 보거나 버림을 받아 일생을 비극 속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음양오행에 따라 손마디를 이용해 간지를 헤아려 남편과 동침하는 날을 정하는 ‘간지법’을 비롯해 소위 속궁합과 아들 낳는 비방을 가르쳤다. 봄에는 갑을, 여름에는 병정, 가을에는 경신, 겨울에는 임계일에 맞춰 관계를 갖게 되면 아들이 생긴다고 믿었다.

원래 나이만 맞춰 보는 걸 겉궁합이라 하고, 사주를 오행에 따라 맞춰 보는 게 속궁합인데, 궁합이 ‘어울린다’라는 뜻이고 보니 요즘은 남자와 여자의 ‘속이 어울리는가’가 속궁합의 기준이 되어 재미를 더한다. 자연히 성기의 크기, 모양과 기능, 성교 시간, 성욕의 크기와 주기 등이 속궁합의 내용이 되었다.

또 여자의 경도가 그칠 때를 기다렸다가 깨끗한 생리대를 차고 피가 붉은색을 띨 때는 관계를 피하고, 금빛을 띠면 그로부터 나흘 안으로 관계를 갖게 했다. 이 나흘 중 홀숫날에 관계하면 아들이 태어나고 짝숫날에 관계를 맺으면 딸이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남자의 정을 받는 날을 ‘씨내리는 날’ 또는 ‘귀숙일’이라 불렀는데 물론 아들을 기대하고 날짜를 맞추곤 했다.

이러한 간지법이나 수태법은 ‘큰머리 치레’라는 풍속을 통해 전수되었는데, 시집갈 날을 잡고 큰머리를 얹으면, 성 경험이 풍부한 유모나 집안의 친척이 와서 이를 가르쳐 주었다.

남자아이들은 서당에서 ‘보정’이라는 과목을 가르쳤다. 보정은 중국의 포박자라는 도교의 가르침에 따른 조선의 성교육 과목이었다. 사람의 본성을 지키고 몸가짐을 정갈히 하며, 지혜롭고 절도 있는 성생활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남녀의 교합 횟수로 20대는 3~4일에 한 번, 30대는 8~10일에 한 번, 40대는 16~30일에 한 번, 50대는 한 달에서 석 달 사이에 한 번, 60대는 7달에 한 번씩 관계를 맺어야 오래 살 수 있다고도 가르쳤다. 잦은 사정은 정기를 잃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남자들은 상투를 틀어 갓을 씌우는 관례식 때 ‘상투탈막이’라는 칠언절구시를 외우게 했다. 그 내용은 민간에 구전되어 온 성교육 자료로서 바른 성 지식을 암기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여성의 신체에 대한 묘사와 관계 때 주의할 점, 태교 방법들로 이루어져 있어 첫날밤을 앞둔 새신랑에게 유용한 성 지식과 부성 태교, 특히 성생활 때 남아의 임신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들이다.

또 ‘삼촌 댁 사랑들이’라는 방식도 있었다. 친부모가 결혼을 앞둔 아들에게 직접 성교육을 해주는 것이 민망한 일이라 여겨 친척이나 친구에게 미리 부탁하여 아들을 심부름 보내는 형식으로 실시된 것이다. 심부름을 위장하여 찾아온 총각 조카에게 말 그대로 실전의 성 지식을 가르치는 풍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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