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문화도시 영도' 사업 지속성 필요
영도구 초고령화로 지역소멸 위험
빈집 늘고 고용 악화해 빠르게 침체
문화도시 사업이 구민에 희망 안겨
삶의 질 향상하며 지역 자긍심 심어
예산 문제로 중단해야 할 처지 놓여
만족도 높은 사업 연속성 이어가야
부산 영도는 12㎢ 면적의 섬으로 이뤄진 자치구다. 영도는 전국의 노년층에게 기암절벽이 많은 해안 절경을 자랑하는 국가 명승 17호 태종대와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영도다리가 있는 곳으로 기억될 터이다. 젊은 층 사이에선 인생샷 건지기에 그만인 전국적인 핫 플레이스로 꼽힌다. 그리스 산토리니 풍광을 닮은 흰여울문화마을과 다양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크고 작은 카페들 덕분이다.
이 같은 영도구가 쇠락의 길을 빠르게 걷고 있다. 중·서·동구 등 인근 지역과 함께 인구가 급감하고 있어서다. 원도심의 심각한 저출생과 청년 인구 유출, 고령화 현상 때문이다. 지난 8월 기준 영도 인구수는 10만 4914명. 한때 23만 명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이나 줄었다. 이곳 인구는 1970~90년대 20만 명을 넘었지만, 1990년대 말부터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인다. 부산의 인구 감소와 침체 상황에 빗댄 ‘노인과 바다의 도시’란 자조 섞인 표현이 한층 잘 어울리는 데가 영도다.
더욱이 영도구는 지역소멸이 우려될 정도여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한 실정이다. 2016년 전국 광역시 구·군 가운데 최초로 소멸위험지역(위험지수 0.42)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올 3월 기준 영도구 소멸위험지수는 고위험지역에 가까운 0.25까지 떨어졌다. 광역시 구·군 중 최악이다. 제2 대도시의 자치구답지 않게 아기 울음이 끊긴 지 오래인 상당수 농촌 지역과 함께 빨리 사라질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지난해 1147곳에서 지난 4월 1339곳으로 가파르게 증가한 영도 내 빈집이 소멸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3%인 부산에서 영도구가 처음으로 30%를 넘긴 초초고령화 사회인 점은 지역소멸 위험성을 가중하는 대목이다. 이런 탓에 올 상반기 영도구 고용지표는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는 악순환이 빚어졌다. 영도는 실업률 5.8%로 전국에서 가장 높고 고용률은 최저인 47.1%를 기록했다.
갈수록 활력을 잃고 암울한 영도구에서 실의에 빠질 뻔한 구민들에게 반전이 생겼다. 2020년부터 국비 지원으로 추진한 ‘문화도시 영도’ 사업이 바로 그것. 이 사업이 주민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는 등댓불 역할을 충실히 해온 게다. 그동안 지역민과 문화·도시 기획자, 예술인 등이 의기투합하고 협업해 곳곳에서 문화공동체를 만들며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펼쳤다고 한다. 어르신과 아이들이 함께 글을 배우고 노래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제작했다. 몇 가지 로컬문화 비즈니스도 이뤄져 지역경제에 보탬이 됐다.
지금까지 5년간 160억 원(국비 50%, 시·구비 각 25%)이 투입된 사업 과정에서 자연스레 세대 간 소통이 원활해지고 수많은 구민이 문화예술과 만나는 일상이 가능해진 게 성과라는 평가다. 주민과 예술가가 서로 돕고 지내는 영도, 노인이 즐거움을 느끼는 영도, 어린이가 웃고 떠들며 신나게 노는 영도, 살고 싶은 영도, 관광객이 몰려드는 문화도시 영도, 자랑스러운 보물섬 등의 새로운 면모로 영도에 씌워진 여러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올해 영도구가 전국 24곳 문화도시 중 최우수로 선정되고 벤치마킹 대상으로 관심을 받는 괄목할 만한 결과로 이어졌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최근 영도구가 내년 2월 끝나는 문화도시 사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해 구민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구청이 내세운 이유는 재정난과 국비 지원 종료다. 이해가 되면서도 너무 경직되고 소극적인 행정이란 인상을 풍긴다.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어 넣고 소멸을 막으려는 구정에 부합하는 데다 거주민의 만족도를 높이며 잘 운영되는 모범사업을 굳이 중단할 이유가 있을까. 성공적인 원도심 재생에 필요한 사업을 발굴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영도 안팎으로 사랑받는 문화도시 사업이 지역공동체 형성과 문화·경제 활성화에 더욱 기여하는 방향으로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내용을 보완해 장려하고 확산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 게 영도와 구민들을 위한 길일 것이다.
급기야 지난달 20일 영도 구민들이 구청 앞에서 사업 중단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데 이어 SNS상에서 사업 지속 방안을 강구할 것을 촉구하는 챌린지를 진행 중이다. “문화도시 영도를 지켜주세요” “니들이 알아? 문화도시 덕분에 치매도 잊었다” “안 된다! 문화도시 없으면 우리들 할매 삶도 허전해진다” “문화도시 이후 영도에 살아서 자랑스럽다” 등등…. 이같이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호소는 타당성이 충분하다.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사업 관계자들과 영도구, 구의회, 부산시, 사회 공헌도가 높은 기업 등이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조직된 시민이 참여하는 지방자치를 구현해야 할 자치분권 시대가 아닌가. 영도구의 전향적인 검토가 있기를 기대한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