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나의 일이 될 수 있는 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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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이미랑 감독 '딸에 대하여'
원작소설을 영화로 재탄생
"타인이 곧 나임을 아는 것"

영화 '딸에 대하여' 스틸컷. 배급사 '찬란' 제공 영화 '딸에 대하여' 스틸컷. 배급사 '찬란' 제공

김혜진 소설의 ‘딸에 대하여’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감도 있었지만 걱정이 먼저였다. 엄마의 목소리가 전면에 드러나는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을 영상 언어로 구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랑 감독은 침묵과 여백, 인물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것만으로도 문자와 영상이 다름을 알린다. 원작의 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영상 언어를 완성한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의 집에 딸이 찾아온다. 이사를 해야 하니 돈을 빌려달라는 딸의 요청에 엄마는 대출을 알아보지만 돈을 빌리기 쉽지 않다. 결국 딸은 7년간 사귄 동성 연인을 데리고 엄마의 집으로 들어온다. 눈에 보이지 않을 땐 그런대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집에서 내 딸과 함께 있는 딸의 여자친구를 보는 일은 참을 수 없다. 딸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소원인 엄마는 “내 딸이 그럴 리 없다”며 현실을 부정해 보지만 바뀌는 건 없다. 엄마는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을 삼킨다. 아직 엄마는 딸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

엄마는 딸이 집으로 들어온 후부터 치매에 걸린 노인 ‘제희’를 돌보는 데 몰두한다. 병에 걸린 노인을 돌보는 일은 가족이라도 하기 힘든 일이지만, 엄마는 남인 제희를 헌신적으로 보살핀다. 제희는 젊은 날 한국계 입양아들을 지원하며 평생을 타인을 위해 살았던 인물이다. 그녀의 이름을 딴 재단이 설립될 정도로 존경받는 삶을 살았지만, 늙음과 병이 찾아온 제희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현재 제희는 세상에서 빠르게 잊혀지는 중이며 요양원의 골칫거리로 여겨진다.

엄마는 병든 제희에게서 딸의 미래를 보았다. 딸이 제희처럼 가족 없이 홀로 지낼까 봐 무섭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사랑을 하는 딸이 모두에게 외면당할까 봐 두렵다. 엄마가 제 몸이 부서져도 상관없다는 듯 제희를 돌보는 이유는 딸이 홀로 곤궁하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또한 가족이 아니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을 엄마는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제희를 존경하는 마음과 딸이 그리 살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양가적 감정이 영화를 통해 전달한다. 딸을 바라보는 얼굴, 한숨, 침묵, 편히 잠들지 못하는 시간은 엄마의 복잡함을 드러낸다. 결국 엄마는 꾹꾹 눌러두었던 말을 딸의 여자친구에게 건넨다.

대학 강사인 딸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을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모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그런데 서로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 엄마와 딸은 무척 닮았음을 알 수 있다. 생김새나 행동을 뜻하는 게 아니다. 딸은 동료 강사의 부당한 해고에 앞장서 항의하며 대학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엄마는 왜 남의 일에 앞장서냐며 타박하자, 딸은 동료가 겪은 일이 언제든 나의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엄마도 제희가 겪고 있는 일이 남의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은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는 남의 일에 침묵하지 않는다.

이처럼 영화는 타인을 위한 삶이 자신을 지키는 것임을 말한다. 엄마와 딸은 속한 세계도 사는 방식도 다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로 인해 영화 말미에 엄마와 제희, 딸과 딸의 여자친구가 한 공간에서 가족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상기시킨다. 더불어 이들을 통해 생물학적 혈연에 기반하지 않는 느슨한 가족공동체를 꿈꿀 수 있게 한다. ‘딸에 대하여’는 엄마의 시선으로 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영화는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무연고 노인, 돌봄노동, 나이듦과 젊음, 성 소수자의 이야기까지 딸과 엄마의 이야기를 거쳐 우리에게 온다. 이 이야기가 언제든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잘 짜여진 쇼트를 통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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