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금, 바로 여기에서
역대급 폭염 몸살 앓은 대한민국
많은 생명 잃고도 매번 ‘기억상실’
기후위기 원인제공자 남의 일 여겨
퇴출 불사하는 ‘연대 행동’ 나서야
2021년 2월 미국 텍사스주 남쪽 샌 안토니오에 눈이 펑펑 내린다. 놀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손을 휘젓고 머리를 감싼다. 같은 시각, 멀지 않은 휴스턴. 눈 폭풍이 거세게 몰아친다. 주유소 연료도, 마트 식료품도 동난다. 수도관이 얼어 물이 나오지 않고, 동파로 천장에서 물이 쏟아진다.
그해 6월 캐나다에서 체감 기온이 50도까지 치솟는다. 케냐에선 메뚜기 떼가 창궐해 식량을 휩쓸고, 거대한 싸이클론이 인도네시아를 덮친다.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한 차 안에서 아이가 신을 찾으며 울부짖는다. 끔찍한 홍수와 산사태는 독일, 중국, 미국 등지를 강타한다. 위성에서 내려다 본 지구에서 셀 수 없는 산불이 일어나 숲과 집을 삼킨다.
잘 만든 재난영화의 장면들일까? 모두 2021년 한 해에 벌어진 실제 상황. 마침 5일 오후 6시 30분 영화의전당에서 닻을 올리는 세 번째 하나뿐인지구영상제(BPFF) 개막작 ‘히어 나우 프로젝트(The Here Now Project)’에 담긴 현장이다. 17개국 12개 언어를 쓰는 세계인이 담은 이 기후위기 다큐멘터리는 이날 처음 아시아에서 공개된다.
올해 우리는 역대급 폭염을 온 몸으로 견뎠다. 기후학자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된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뜨거운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지난 3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폭염으로 3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그래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우리는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영화를 보면, 재앙이 발생하기 전 잇따르는 징후와 경고를 무시하다가 늘 사달이 난다. 현실에서도 기후위기가 부르는 파국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 뻔하다.
기후위기는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생명을 앗아가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앗아가서다.
악순환의 고리는 이렇게 연결된다. 기후 변화는 생태계를 무너뜨린다. 인간의 건강은 더욱 나빠진다. 어린이, 청소년의 기후 우울증이 폭증한다. 식량난에 인플레이션이 극에 달한다. 이는 노동력과 생계소득, 식량 생산 감소로 이어진다. 삶의 질은 갈수록 떨어져 극단적인 양극화가 심화한다. 기후변화를 유발시킨 최상위층이 재력으로 편안한 삶을 유지하는 사이 그럴 수 없는 이들이 더 고통을 받는다. 사회 갈등이 폭발한다. 사회 시스템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결국 세상은 ‘지옥’이 된다.
이런 재앙의 현장은 멀리 있지 않다. 아름다운 푸른 하늘에 지금도 매일 1억 600만 t이 넘는 공해 물질이 퍼져나간다. 비행기, 석유 제조, 산불, 제조업체, 농작물 소각, 대규모 축산업 등이 범인이다.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는 역사에 남을 판결을 남겼다.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량을 설정하지 않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계획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이다. 이대로는 국민, 특히 후손들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기후위기 이야기가 나오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들이 많다. 텀블러를 사용하고 열심히 쓰레기 재활용을 한다고, 간헐적 비건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해결될 수준이 아니라 한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며 자포자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기후위기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초래한 것이다. 자연은 죄가 없다. 인간이 해결해야 한다. 지구는 인간이라는 골칫덩이가 사라져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속도를 늦추고 서둘러 적응해야 한다. 대안을 찾기 위해 같이 연구하고 지지하지 않으면 도미노처럼 모두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 많은 투자로 속도를 늦추고, 뜨거워진 세상에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열사병 증세를 보이는데도 ‘꾀병’이라거나 ‘좀 쉬면 낫겠지’라고 안이하게 대응하다가 소중한 생명을 잃는 비극을 더 반복해선 안된다.
‘기후위기 각성’을 해야 한다.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이라는 JTBC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세계 각국에 있는 타인의 삶을 72시간 동안 대신 살아보는 것이 콘셉트다. 나만의 삶이 아니라 기후위기로 세계인이 겪는 고통을 잠시라도 체험하는 콘텐츠, ‘지구촌’과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 기후위기는 나 몰라라 무작정 탄소를 배출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타격을 주는 ‘연대 행동’이 지금 필요하다. 탄소 저감 활동, ESG 경영에 무신경한 기업에 전화나 SNS채널 등으로 항의하고, 불매운동에 나서자. 반기후위기 공약은 투표로 심판하자. 변하지 않으면 퇴출된다는 사실을 기업인과 정치인이 깨닫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함께 연대하며 행동해야 우리 아들딸이 살아남는다.
박세익 플랫폼콘텐츠부 부장 run@busan.com
박세익 기자 r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