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우리가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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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범어사 성보박물관 부관장

정쟁을 벌이던 여야 의원들이 2일 국회 개원식 후 단체촬영을 하며 모처럼 손을 맞잡은 채 웃고 있다. 연합뉴스 정쟁을 벌이던 여야 의원들이 2일 국회 개원식 후 단체촬영을 하며 모처럼 손을 맞잡은 채 웃고 있다. 연합뉴스

성직자들은 일상의 기도는 물론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특별기도가 끝날 때 반드시 축원을 한다. 축원이란 자기가 믿고 의지하는 신앙의 대상에게 원하는 일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일종의 청원이다. 필자도 기도 때마다 하는 두 가지 축원이 있다.

첫 번째는 남한과 북한의 빠른 통일을 축원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가(靈駕, 죽은 이) 축원이다. 영가 축원은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남한과 북한의 미발굴 영혼에 대한 축원이다. 통일에 대한 축원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출가할 때 종단에서 배운 축원이 지금까지 이어온 경우이고, 미발굴 영혼에 대한 축원은 경기도 파주 북중군묘지, 일명 적군묘지를 다녀온 이후 추가된 것이다.

지구촌 2개 전쟁에 인명 피해 극심

남북한 대치한 한반도 긴장감 고조

국내 여야 정치권은 국론 분열시켜

평화·통일 위해 결속하고 화합해야

이게 성직자가 간절히 바라는 소망

필자는 한국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전후 세대이다. 하지만 통일에 대한 축원이 1998년 출가 당시까지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첫 번째 축원이 된 것을 보면 승속을 떠나 우리 민족에게 통일은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지상 과제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0여 년 전 지인 요청으로 한국전쟁 당시 적군인 북한군과 중공군 묘지에서 기도할 때 무척 마음이 아팠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피어나지 못한 많은 청춘들이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됐기 때문이다.

두 가지 축원이지만 사실은 전쟁, 특히 한국전쟁이라는 한 가지 사건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수많은 병사들과 일반인들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목표로 살아간다. ‘살아야 한다’와 ‘행복하게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며, 대부분 종교에서 추구하는 ‘영원한 삶’조차도 같은 맥락일 터이다. 영적인 삶은 그만두고라도 육신의 생존은 모든 생명체가 추구하는 바이다. 그런데 노화나 자연재해 같은 불가항력적인 요인을 제외하면 인위로 인간의 생명을 대량으로 빼앗는 합법적 수단이 바로 전쟁이다.

문제는 한반도 또한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대륙의 끝이자 해양의 시작이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진영 간 이념 대립, 미국·러시아·중국·일본이라는 강대국들의 복잡한 손익계산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객관적인 데이터만 보면 한반도의 전쟁 발발은 기우로 보인다. 하지만 역사 속 많은 전쟁이 예기치 않은 우발적인 사건이나 위정자의 잘못된 일시적 판단에 의해 일어나기도 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북한 김정은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 푸틴, 중국 시진핑, 일본 기시다 등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한반도의 전쟁 발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우리만 잘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전쟁 역시 주변국들의 이데올로기 충돌과 김일성의 오판에 의해 일어난 비극이었다. 당시에도 설마설마했지만, 설마가 수많은 사람을 잡았던 것이다.

전쟁과 관련해 “늙은이가 책상에서 결정하면 젊은이가 들판에서 죽는다”는 옛말이 있다. 젊은 군인뿐 아니라 여성, 어린이, 노약자도 전쟁의 피해를 본다. 전쟁에 있어 좋은 명분이란 한낱 사치다. 전쟁영화에 나오는 러브스토리나 영웅담, 휴머니즘 따위는 그것이 제아무리 애틋하고 용맹스럽고 숭고하다고 해도 전쟁 없는 평범한 일상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우리는 수많은 외침에도 한민족의 정체성과 영토를 잘 지켜왔다. 하지만 위기도 여러 번 있었다. 그 요인은 언제나 내부 갈등과 분열이다. 고조선이 중국 한무제의 침략에 멸망할 때 우거왕을 죽인 신하 참(參)이 있었다. 고구려 멸망에 연개소문 아들들의 권력다툼이 있었고, 백제 멸망에도 의자왕을 배반한 예식진 장군이 있었다.

우방만 믿고 절대적으로 의지해도 안 될 것이며, 내부 분열로 외부 적들에게 오판의 기회를 줘서도 안 된다. 그것이 진정 우리가 살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국민을 화합시켜야 할 정치권이 되레 국론을 분열시킨다. ‘인사가 만사’이므로 대통령은 국민의 소리를 잘 경청해 올바른 인사를 임명하고, 야권도 역사문제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지 말고 진정성을 갖고 대해야 한다. 어수선한 국내외 정세 탓에 걱정이 크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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