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건국절 논란은 왜 안 사그라질까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이후 불거진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정부가 건국절을 제정할 의사나 계획이 없었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하지만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 역사단체들은 대통령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 관장 등의 지명을 철회하는 등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이라고 한다. 건국절 논란이 사그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뉴라이트가 촉발한 건국절 논란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확립된 건국의 날인 만큼 이를 기념하자”는 게 건국절 주장의 요체다. 1948년 남한 단독정부는 곧 이승만 정부다. 이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건국의 아버지’라는 논리로 연결된다.
건국절 주장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건 이명박 정부 때다. 2006년 <반일종족주의> 저자 이영훈 씨 등 뉴라이트계(극우와 상당 부분 겹친다) 인사들이 언론 매체를 통해 건국절을 주장하자, 2007년 당시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변경하는 국경일 개정 법안을 발의했고, 2008년 국무총리 산하 ‘대한민국 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출범했다. 시민단체와 야권의 반발이 거세 유야무야됐지만 이후에도 건국절 주장은 이어졌다. 2014년 당시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건국절 제정 법안을 새로 발의했지만, 역시 흐지부지됐다.
건국절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1919년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점을 지목한다. 이는 현행 헌법에 명확히 규정된 바다. 따라서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건국절 주장은 오히려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흔드는 꼴이 된다. 이들은 또 건국절을 수용하면 1919년 이후 우리 독립운동사가 모두 사라지고, 따라서 친일파도 없는 게 된다고 강조한다.
■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건국절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하지 않겠다고 직접 나서 단정적으로 말한 적도 없다. 건국절을 반대하는 이들은 그런 이유로 여러 정황을 살펴 윤 대통령에게 의구심을 나타낸다.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에 대한 윤 대통령의 태도가 그중 하나다.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 추진은 건국절 논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안이다. 이는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해 7월 19일 이 전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명실상부한 국부”라고 말한 데서 충분히 증명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에 건립 기금 500만 원을 기부하면서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의 성공을 응원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독립운동과 광복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도 논쟁 대상이다. 2022년 취임 후 첫 광복절을 맞은 윤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우리의 독립운동은 끊임없는 자유 추구의 과정으로서 현재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경축사에는 ‘자유’가 무려 33번 언급됐다. 윤 대통령의 ‘자유’는 ‘반공’ 또는 ‘반북’으로 대체할 경우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실제로 이날 언급된 ‘자유 추구의 과정’은 ‘공산 세력에 맞서 자유국가를 건국하는 것’을 일컬음이었다.
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일관된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우리의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고 독립운동을 정의했고,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한반도 전체에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공산 세력’ ‘자유 추구’ ‘건국 운동’ 등은 건국절을 주장하는 뉴라이트계 인사들이 흔하게 동원하는 단어들이다. 윤 대통령은 비록 건국절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런 정황이 이명박 정부 시절 건국절 추진 움직임이 재연될 수 있다는 의구심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뉴라이트 성향 윤 대통령의 사람들
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온전히 혼자만의 것일까. 관련해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19일 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주위에 역사에 대한 이상한 견해를 부추기는 이들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고 말한 것. 아닌 게 아니라 윤 대통령 주변에 뉴라이트 성향, 특히 이명박 정부 때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실제로 윤 대통령 집권 후 요직에 기용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그 지적이 그리 틀린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뉴라이트를 이끌던 핵심 인물들을 국가안보실장, 국정상황실장, 방송통신위원장, 통일부 장관, 국방부 장관 등에 앉혔고, 이런 경향은 역사·교육 관련 국책 기관의 수장 임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국가교육위원장, 국사편찬위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등이 죄다 편향된 역사 인식을 가진 뉴라이트 계열의 인물들이다. 이번 광복절에 파란을 일으킨 독립기념관장도, 본인 주장과는 무관하게, 뉴라이트 성향 인사로 분류된다.
■반국가세력 vs 일진회 같은 인사들
윤 대통령이 지금껏 보인 역사 인식이 윤 대통령 개인을 넘어 그의 주변에 포진해 있는 집단의 인식에 연유한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이 “있지도 않은 건국절 계획” “억지 주장” 운운하고 심지어 “엄정 대응할 생각”이라고 을러대도, 윤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이런 인물 배경이 바뀌지 않는 한 건국절 논란은 사그라질 수 없는다는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건국절 논란이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지난 13일 알려졌다. “국민 민생과는 동떨어진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라는 취지”라고 대통령실은 해명했지만, 뉘앙스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윤 대통령의 과거 발언 때문이다.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2월 윤 대통령은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 왜 필요한지 모른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혹 “건국절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국민은 먹고사는 데나 신경 써라”는 뜻은 아니었는지….
‘두 쪽 난 광복절’ 사태에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철회하지 않는 것을 보면, 윤 대통령은 자신 주위에 포진한 뉴라이트계 인사를 내칠 생각이 없는 게 분명하다. 아니, 이전보다 더 강고한 태도를 보인다.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며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강조한 게 그렇다. 이날 ‘을지 자유의 방패’ 연습을 계기로 열린 국무회의였다고는 하지만, 가슴 한편에 섬찟함이 가시지 않는다. 반국가세력은 누구를 지칭하며, 항전 의지는 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뜻인가.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20일 “대통령 주변 옛날 일진회 같은 인사들을 말끔히 청산하라”고 요구했다. 일진회는 구한말 일본의 대한제국 병탄 정책에 적극 호응한 대표적인 친일단체다. 묻게 된다. 윤 대통령이 말한 반국가세력이 문제인가, 이 회장이 언급한 일진회 같은 인사들이 문제인가. 어느 쪽이 실체인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