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독립기념관장이라는 그 자리
논설위원
‘일본 역사 왜곡’ 국민적 분노
독립기념관 건립의 바탕 돼
윤석열 정부 임명 김형석 관장
친일청산 의미 폄훼 등 논란
항일·독립 의미 지켜야 하는
기념관 정체성 뿌리째 흔들어
광복회가 15일 예정된 정부 공식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키로 했다. 1965년 광복회 설립 후 처음 있는 일이다. 독립운동가 단체들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도 광복회와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 역시 초유의 일이다.
지난 8일 취임한 김형석 제13대 독립기념관장 때문이다. 이들은 김 관장 임명 철회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김 관장이 독립기념관장으로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김 관장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부인하며 일제강점기가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고 주장하는 전형적인 뉴라이트 인사’로 규정한다.
김 관장은 뉴라이트임을 부인한다. 스스로도 뉴라이트의 폐해와 오류를 아는 듯하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을 테다. 역사에 대한 평가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따위는 학문적 소신의 발로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가 살아온 흔적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김 관장은 건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 경희대 대학원에서 사학 박사 학위를 땄다. 이후 역사학자로서 의미 있는 활동은 찾아지지 않는다. 대신 개신교 목사이자 대북지원 사업가로 활동한다. 19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다가 이듬해 한민족복지재단을 설립해 10여 년간 사무총장과 회장을 맡았다. 이후엔 다시 변신해 2016년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 2020년 대한민국사연구소 소장, 2022년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 초대 이사장이 됐다.
독립기념관은 일본 정부의 과거사 왜곡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바탕으로 건립됐다. 1982년 7월 일본 문부성이 고교 교과서에 일제강점기 관련 부분을 수정했다. 창씨개명, 신사참배, 징용 등의 행위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바꾼 것이다. 반일 감정이 불타 올라, 같은 해 8월 독립기념관 건립준비위원회가 출범하고 국민 모금 운동이 전개됐다. 성금은 당초 목표액 500억 원을 훌쩍 넘어 걷혔다. 1987년 광복절에 개관한 독립기념관은 이처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 강력 대응하자는 국민의 의지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그래서 독립기념관장직은 범상한 자리가 아니다. 항일과 독립의 가치와 의미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역대 독립기념관장의 면면에서 그런 상징성을 느낄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이자 광복군 출신인 안춘생 1·2대 관장을 비롯해 역대 독립기념관장 대부분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었다. 예외가 7대 김삼웅 관장과 12대 한시준 관장이었다. 하지만 김삼웅 관장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조사위원이었고, 한시준 관장은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사 연구에 매진해 온 학자라는 점에서 수긍이 된다.
김 관장은 그런 상징성을 갖고 있지 않다. 독립운동가 후손도 아니고 학자로서 편력도 독립운동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평생 일군 경험과 전문성, 인적 네트워크 능력 등을 총동원해 독립기념관 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경험이라고 하지만 대북지원 활동가 외 특별한 이력이 보이지 않는다. 전문성을 따져도 그렇다. 김 관장은 ‘명말의 경세가 서광계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근현대사 특히 독립운동사와는 관련이 없는 주제다. 역사 관련 저서도 일천하다. 역사 논평이라 할 〈끝나야 할 역사전쟁: 건국과 친일 논쟁에 관한 오해와 진실〉이 있지만, 친일청산의 의미를 폄훼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 재검증을 요구하는 등 논란이 많은 저서다. 이는 김 관장이 뉴라이트로 지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적 네트워크로는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가 유력하다. 하지만 이 재단의 손병두 상임고문은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건축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이영일 고문은 문재인 정권을 주사파 정권으로 단정해 파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어느 경우에서도 독립기념관장으로서 적합한 자질과 능력, 자격을 찾을 수 없다. 김 관장은 “독립기념관장으로서 무슨 일을 중점적으로 하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 회복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독립기념관장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답변이다. 이런 김 관장을 두고 역사학회 등 역사 관련 48개 단체는 13일 “민족 자주와 독립 정신의 요람인 독립기념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독립기념관은 15일 열기로 했던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했다. 독립기념관 개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독립(광복)을 기념(경축)하지 않는 독립기념관이라니!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아찔하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