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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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이른 새벽, 거리를 쓰는 빗자루 소리에 눈을 뜬 남자는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양치질을 하고 분재에 물을 주고, 소지품을 챙겨 집을 나선다. 집 앞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들고 오래된 차에 올라탄 남자는 카세트 테이프 하나를 골라 올드팝을 듣는다. 그때 아침 해가 떠오른다. 어제도 떠올랐을 해를 감격한 듯 바라보는 남자가 환하게 미소 짓는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얼굴이다.

남자는 도쿄 시부야 공공화장실을 청소하는 ‘히라야마’다. 일을 시작하는 그의 행동에서는 어떤 망설임도 없다. 좌변기와 비데,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반짝반짝 빛나도록 쓸고 닦는다. 지각을 한 젊은 동료는 설렁설렁 일을 하면서 내내 투덜대지만 히라야마는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다. 그런 그의 모습이 유별나 보이는 건, 청소 용구와 물품을 직접 만들 정도로 정성을 다하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공공화장실은 금방 다시 엉망이 될 곳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매일 온힘을 다하여 청소하는 그의 모습은 종교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고결하고 거룩해 보인다.

빔 벤더스 감독 '퍼펙트 데이즈'

환경미화원 '히라야마' 삶 그려

평범한 일상 속 삶의 묘미 찾아

점심시간에는 공원 벤치로 나와 샌드위치와 우유로 끼니를 때운다. 문득 고개를 든 그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바라보다 필름 카메라를 꺼낸다. 풍경과 시간을 기억해두려는 듯 그 순간을 찍는다. 퇴근길엔 목욕탕에 가고, 지하철역 상가에서 술 한 잔과 식사를 간단히 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책을 읽다 잠이 든다. 다시 아침, 빗자루 소리에 눈을 뜬다. 영화 ‘퍼펙트 데이’는 한 시간가량 히라야마의 일상을 따른다. 어떤 사건이나 사고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은 무척 단조로워 보인다. 그러나 히라야마가 느끼는 일상이야말로 완벽하다. 제 일을 하고, 여름날의 햇빛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며, 술 한 잔을 마시고, 소설을 읽으며 고된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하루가 완벽하지 않을 수 없음을, 히라야마는 몸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반복되는 일상에 어떤 틈이 발생하면 힘들다. 사전 통보 없이 일을 그만둔 동료 때문에 청소해야 할 곳이 두 배로 늘어나면서 퇴근 후의 시간이 사라지고, 엄마와 싸우고 가출해 자신의 집을 찾아온 조카딸 ‘니코’로 잠자리까지 불편해진다. 일상의 리듬이 깨지자 그의 삶은 한순간에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영화는 완벽한 하루는 좋은 직장을 가지거나 돈이 많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린다. 즉 히라야마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속도에 제 몸을 맞추려 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흘러간다. 그로 인해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지키며 완벽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물론 속도에 둔감하고 변하지 않는 히라야마가 자신의 틀 속에 갇혀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다른 순간을 찾아내는 사람이 자신만의 견고한 성에 홀로 살 리 만무하다. 히라야마는 매일 아침 뜨는 해와 나무를 비추는 햇살의 빛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할 줄 알며, 집 나온 조카를 다그치기 보다는 가만히 지켜보며 감싸 안아주는 다정함이 있다. 단골 선술집 여주인의 전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그림자밟기 놀이를 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넨다.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누구보다 세계와 일상에 유연히 반응하고 있었다.

‘퍼펙트 데이즈’는 잔잔한 일상을 그리는 듯 보이지만 같은 일상이란 존재하지 않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누구도 감지할 수 없는 다른 어떤 순간들을 포착한다. 이를 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더불어 감독 빔 벤더스와 배우 야쿠쇼 코지의 만남, 이른 새벽 뜨는 해와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올드팝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완벽하게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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