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국민의힘에 '부산의 힘'은 없다
부산 국회의원 18명 중 예결특위 전무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대표권 배제
산자위·과기방통위 등 상임위에도 빠져
부산 일자리 창출 등 현안 해결 난망
윤 대통령, 탄핵 저지선 확보 부산 외면
지역 이익 못 챙긴 정치인 미래 없어
매년 연말 국회 예산 심사철이면, 서울 여의도에 진풍경이 벌어진다. 각 지자체 단체장은 국비 확보를 위해 서울 여의도에 숙식하다시피 한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호텔에서 국민의힘 부산시당과 예산정책협의회를 개최하고, 국회 예결위원들을 차례로 만나 시의 주요 사업에 대한 국비 확보 당위성을 설명했다. 지방정부가 국비를 확보하기 위해 지역 국회의원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찾아갈 의원실조차 찾기 힘든 지경이다. 국비의 감액 및 증액을 결정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에 부산 지역구 18명 국회의원 중 한 명도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에서 제출한 예산안은 국회 상임위원회를 거쳐 50명 정원의 예결특위에서 심사한 뒤 다시 여야 15명으로 구성되는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에서 최종 심의한다. 예결위와 예산소위에서 정부와 여야, 지역구별로 날밤을 새우면서 기싸움을 벌인다. 국가 예산을 배분하고, 지역 살림을 챙기는 첨예한 예산 정치에서 부산은 발언권도, 비빌 언덕도 없는 처지다.
예결위에 지역구 의원이 있어야 지역별 예산 배분 과정에서 긴밀한 내부 협의가 가능하다. 부산은 그런 과정 자체에 끼어들 가능성조차 차단됐다. 그 흔한 ‘쪽지 예산’ ‘카톡 예산’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에 비해 인근 시도는 경남 4명, 경북 3명, 대구 2명, 울산 2명의 여야 의원이 포진해 부산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국회 내부에서도 당황할 정도이다. 가뜩이나 정부의 긴축예산 집행 기조 속에서,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 레버리지를 잃은 부산만 국비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또 다른 문제는 국회 상임위 중복과 부재다. 부산 국민의힘 의원 17명은 행안위와 교육위에 3명씩이나 집중돼 있다. 법사위와 기재위, 국토위에 2명씩 배정했다. 산자위, 과기방통위에는 한 명도 없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중국산 공세로 허덕이는 지역 조선기자재 산업 회복, 배터리·반도체로 산업 구조조정, 스타트업과 소상공인 활성화도 모두 산자위 소관이다. 부산의 일자리 확충을 위한 핵심 상임위다. AI 등 디지털 대전환, R&D 등 지역 미래 먹거리를 위한 업무를 총괄하는 과기방통위에도 부산 의원은 없다. 부산은 올해 국내 광역시 중 처음으로 소멸 위험 지역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20여 지역 대학에서 아무리 청년 인재를 배출해도, 졸업과 동시에 일자리를 찾아 부산을 떠나는 현실이다. 이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산자위, 과방위에서 부산 국회의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부산 정치권의 무능이 크다. 예산에 대한 의원들의 무지와 개인적인 욕망, 부산시당의 정치력 부재가 빚어낸 참사다. 예결위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한 것 아니냐는 의문마저 들 정도이다. 지역 소멸의 심각성과 부산 미래 비전 공유, 팀플레이는 약에 쓰려도 찾기 힘든 실정이다. 상임위-예결위-소위로 이어지는 강력한 라인업으로 국비 지원을 더 끌어올리는 등 부산 정치력의 극대화를 위한 전략은 처음부터 없었다.
두 번째는 국민의힘 중앙당과 윤석열 대통령의 지역 홀대이다. 집권 여당의 참극으로 끝난 4·10 총선에서 부산은 국민의힘에 18석 중 17석을 몰아주면서 탄핵 저지선을 지켜내는 역할을 했다. 총선 직후 윤 대통령은 PK 당선인들에게 “부산이 효자” “부산이 너무나도 큰 역할을 했다”면서 각별히 격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윤 대통령과 중앙당은 부산을 ‘고향 선산이나 지키는 굽은 소나무’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윤석열 정권의 행정권을 방어한 부산이지만, 법사위와 운영위에 의원 2명씩을 징발해 ‘정치투쟁의 불쏘시개’로 활용할 뿐이다. 한마디로 ‘장기판 졸’ 신세다. ‘글로벌 허브 도시 부산’이란 립서비스 외에는 ‘짝사랑’에 대한 정치적 배려는 없다.
‘돼지 구유통 정치’(pork barrel politics)라는 정치 용어가 있다. 미국 남북전쟁 이전에 남부 농장에서 고기가 든 돼지 구유통에 노예들이 모여들어 서로 많이 먹겠다고 경쟁하는 것에서 유래한 말로, ‘지역 예산 정치’를 빗댄 표현이다.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재선이며, 이를 위해 자신의 지역구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예산 배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뜻이다. 돼지 구유통까지는 아닐지라도, 지역구에 이익을 가져다 오겠다는 열정, 재선하겠다는 욕망조차 없는 지역구 국회의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아마 이 순간에도 부산 국회의원들은 얄팍한 예산 따내기 성과를 알리기 위해 골목마다, 건널목마다 ‘플래카드 내걸기’에 바쁠 것이다. 자기 지역구 밥그릇조차 챙기지 못한 정치인과 정당에 미래가 있을까.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